「파리」의 암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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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890년 「크리스머스」의 전야, 괴상한 옷차림의 한 동양인이 「파리」의 거리를 서성거리고있었다. 그의 품안에는 조선국외무 대신이 발행한 신분증명서 한통과 어느 「프랑스」 신부 앞으로 보내는 소개장1통이 있을 뿐이었다.
36세의 홍종우는 「프랑스」말은 한마디도 할줄 몰랐다.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를 돕기로한 신부도 공교롭게도 「프랑스」에는 없었다. 물론 돈이 있을 턱도 없었다.
그가 왜 「프랑스」에 갔으며, 「파리」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있었는지는 전혀 알길이 없었다.
그러나 촤근에 발견된 자료로 이 수수께끼가 조금 풀려난 것같다.
「파리」에 발을 들여놓은 최초의 한국인은 상당히 따뜻한 대접을 받았던 모양이다. 공식 「리셉션」이나 무도회에도 초대되고 「르·피가로」지에도 소개되고 「르·몽드」지에도 그의 사진이 실렸다.
이리하여 후원자들도 생기고, 홍종우는 빈주먹으로도 용케 살아나갈 수 있었는가보다.
그러나 왜 「프랑스」의 학자며 고위관리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섰을까. 『어떤 정치적 살인자』라는 기록을 써낸「펠릭스·레가메」는 처음 본 홍종우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확실히 그에게는 뭔가 비범한데가 있었는가 보다. 「레가메」의 기록에 의하면 홍은 춘향전의 번역을 돕고, 또 심청전을 번역 출판했다.
「프랑스」말을 하나도 모르던 그가 불과 2, 3년 사이에 소설을 번역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가 얼마나 부지런히 공부했겠는지 짐작 할만도 하다.
그는 주로 학자·소설가들과 교유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단국의 운명에 대한 깊은 정치적 관심이 툭하면 밖으로 터져 나왔던 것 같다.
그렇던 그가 왜 「프랑스」를 떠나고 언제부터 김옥균을 암살하기로 했는가가 수수께끼다.
홍종우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보는 재양과 이성의 소유자였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가 어느 격정에 눈이 어두워서 김옥균을 암살했다거나 사리에 팔렸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그는 여러 달 동안을 두고 김옥균을 따라다녔다. 그 동안에 망설임도 많았고 회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단순한 암살 꾼으로만 평가되어 오기가 일쑤였다. 반면에 김옥균은 근대화의 다시없는 기수로 추앙되어 왔다.,
이제 무엇이 홍종우를 암살자로 만들었는지 조금씩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것 같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킬수는 없다지만 어쩌면 그의 경우는 지나치게 역사가들의 구박을 받아왔던 것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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