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걸린 「유러-커뮤니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해 9월 「프랑스」사회당과 공산당의 좌파연합전선이 결별했을 때 이를 『「유러-커뮤니즘」의 죽음』이라고 「프랑스」의 한 정치평론가는 지적했다.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포기, 복수정당제의 존속, 탈소 독자노선을 내세워 서구 대중의 구미를 돋웠던 「유럽」공산당들의 대명사가 된 「유러-커뮤니즘」의 선풍은 지난 2∼3년 동안 열병처럼 번져 78년에는 서구에 공산당 정권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게 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스페인」에 의해 주도되어온 「유러-커뮤니즘」의 맥락은 「프랑스」세의 퇴색으로 기우뚱거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8년이 「유러-커뮤니즘」의 장래를 가름하는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올 3월의 총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프랑스」의 여론조사는 좌파연합이 유지되면 53대47로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온 적도 있었다. 좌파의 분열로 이러한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포기를 선언한 뒤 처음 맞는 선거에서 「프랑스」공산당이 얼마나 득표할 수 있는가는 큰 관심거리다. 이념의 변질을 두려워한 공산당의 전략적인 후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사회당이 공산당보다 우위에 설 가능성이 큰데다 의회내의 활동에서도 다른 정당과의 제휴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도 있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사회당과 제휴하다보면 공산당의 독자성이 퇴색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프랑스」좌파연합의 붕괴는 공산당의 혁명 정당으로서의 성격·이념상의 비타협성을 재확인한데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집권선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공산당은 지난 76년 선거에서 기민당에 이은 제2당으로 부상한 이래 지금까지 17개월 동안 기민당의 소수연립내각에 소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기민당의 반대로 내각의 참여는 포기하는 대신 중요정책 결정에 공산당의 자문을 구한다는 형식으로 의회내에서의 표결에는 기권하여 내각을 지탱시켰다는데서 소극적 참여라는 말은 타당하다.
「이탈리아」공산당의 집권전략은 될 수 있는 대로 단독집권이 가능하더라도 이를 피하고 단계적인 정권참여를 꾀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공산당의 단독집권이 이루어질 경우를 상정할 때 국내외에 미치는 충격은 예측하기 힘들다.
공산당의 집권이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전체 외교정책의 역류를 뜻한다. 경제·통화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물론 NATO동맹체제에 위기가 올 가능성도 많다. 뿐만 아니라 「칠레」「아옌데」공산정권의 비극적인 운명까지 고려한다면 「이탈리아」공산당의 단계적 정권참여 전략은 쉽게 이해된다.
이러한 시기에 12일 미국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국무성의 성명을 통해 서구 공산당의 참정을 반대한다고 선언한 것은 「유러-커뮤니즘」의 확산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미국방문을 거절했던 「미테랑」「프랑스」사회당 당수를 좌파연합이 붕괴된 뒤 「카터」대통령이 최근 「프랑스」를 방문하여 만났다는 사실, 「카를리오」「스페인」공산당 당수의 미국여행 허용 등은 미국의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유러-커뮤니즘」이 「딜레머」에 빠졌다고 판단한 시기를 택해 「이탈리아」의 보수세력을 두둔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유럽」에서의 공산주의 세력대두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한 것이다. <김동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