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유주현씨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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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8년은 1908년 육당 최남선에 의해 개화한 우리나라 신문학이 70주년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새로운 한국문학의 전통이 수립된 것으로 보이는 80년대 문학에의 문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진작가 유주현씨는 한국문학에 있어서 이 같은 시대적 의미가 「정신사적인 전환의 계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방전의 우리문학을 저항정신의 문학이라고 볼 때 해방이후 30여년간의 우리문학을 특징지을 만한 문학정신은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요.
하지만 금년에 이르면서 문학정신에 대한 작가들의 사명의식이 차차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새해에는 그것이 하나의 틀로서 갖춰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유씨는 그 문학정신을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로 보았다.
그렇다면 70년대 이후, 특히 근자에 나타나고 있는 문학의 대중화현상은 그 같은 문학정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문단이란 잡다한 성격의 작가들이 섞여 형성되는 것입니다. 「작가란 모두 이래야 한다」는 획일적인 주장은 하고싶지 않아요. 몇몇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읽혀서 「붐」을 일으켰다- 이걸 나쁘게만 볼 수는 없어요. 새해에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리라고 보며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유씨의 지적은 문학의 순수성과 대중성이 양립 공존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씨는 앞으로 더욱 많은 신인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고 그 신인들이 그 같은 표피적인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제 막 등장하는 신인들이 문학의 근원에 접근하기도 전에 대중을 의식하면 좋은 작가는 나올 수 없어요. 우리문학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좋은 신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야단스럽기만 하면 곤란하지요.』
세계의 문학수준과 우리의 문학수준을 비교할 때 장편에서는 다소 뒤떨어지지만 단편에서는 충분히 겨룰 만하다는 유씨의 진단.
『하지만 그건 우리 쪽만의 느낌일는지도 모르지요. 그네들에게 비교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음악·미술·연극 등에 비하면 우리 문학의 세계진출은 거의 막혀 있는 셈인데 유씨는 이 문제에 대해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에 기대를 걸었다.
『당국이 이 문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하니 새해에는 우리문학이 활발하게 해외에 소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시급한 문제는 우리 나름의 전통을 확립하는 것이지요.』
한국문학의 전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한국문학.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고 체념하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유씨는 한 시류나 한 현상에 집착하는 것보다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하는 문학에서 우리의 전통을 발견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방 후 우리문학을 10년 단위로 구분할 때 그 같은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50년대나 60년대에 비해 70년대에 더 희미해진 것 같아요. 78년을 중요하다고 보는 까닭은 80년대를 목전에 두고 작가라면 마땅히 전통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지리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78년의 한국문학은 이제까지의 피상적이며 경향적인 문학에서 탈피, 작가들 스스로가 한국문학과 그들 자신을 책임지는 문학이 나올 것으로 유씨는 전망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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