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만 동의 농촌주택건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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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83년까지 농촌주택 5만 동을 새로 짓거나 개조키로 한 정부는 계획 제1차 연도인 올해 안에 8백억 원을 들여 개량주택 5만 동을 건립할 계획이다.
농촌 근대화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농민들의 주택을 근존 적으로 개조하여 도시주택 못지 않게 쾌적하고 실용적이며 또한 위생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자원의 제한이 심각한 개발도상국으로서 이처럼 막대한 정부예산을 산업의 실비투자가 아닌 농촌주택 개량사업에 집중 투입한다는 것은 투자의 우선 순위에 비춰볼때 여간해서는 생각키 어려운 결단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처럼 큰 비중을 두고 추진되는 농촌주택 정책은 그 어느 국가 시책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치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졸속으로 인한 시행착오가 없도록 각별한 배려가 요청된다.
취락의 형성과 주거양식 및 생활공간의 물리적 배치는 그 자체가 사회생태학적 측면에서 인문관계 및 문화적 가치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때문에 주택정책은 단순히 물리학적측면이나 그 외형적 체재에만 치우쳐 획일적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될 성질의 것이다.
특히 혈연 사회적인 연대성과 관습적인 생활형태를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농촌 주거환경을 개선하는데는 개별주택만의 현대화나 기능위주의 취락재배치를 강행하는 것만으로써는 진정한 개발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농촌의 주거형태는 무엇보다 논·밭·과수원 등 농민들의 경제생산활동 및 가족생활영역, 그리고 문화·교육·협동조합 등 주민들의 공동활동기능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전체부락의 조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지역의 자연적 배경·주민고유의 관습 등과의 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개량주택의 형태와 규모도 더 다양화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제시된 15∼25평형 개량주택은 고작 5인정도의 가족성원 모형으로 하여 산출된 넓이와 시설을 갖춘 주택으로서 그 자체가 우리나라 농가의 가족구조나 농촌사회의 기능적 측면을 완벽하게 고려한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앞으로는 농촌소득수준이 날로 향상되고, 생활문화가 변천하리라는 것을 감안할 때, 주택의 건축규모를 너무 작게 책정, 공급할 경우 멀지 않은 장래에 주택으로서의 구실을 못하거나 새로운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결과를 빚을 우려도 없지 않다.
이런 견지에서 지역에 따른 가구당 소득수준, 주거비 지출의 능력, 재산형성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인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도록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개량농가주택 「모델」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면을 소홀히 한다면 자칫 주민의 정서생활에 지장을 주고 이웃간에 단조롭고 비인간화된 생활환경이 조성될 염려도 없지 않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주택이란 본래 먹고, 입고, 자는 인간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우선 개인의 취향 등 인간적인 요건이 반영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비록 농촌이라 할지라도 주택의 건설에는 전통적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고유 미를 지니도록 해주기를 당부한다.
한 나라의 문학적 특성은 종교건축이나 공공건물에서 가장 힘있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국민생활의 터전인 주거양식에서 그 개성적 표현이 두드러진 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지붕의 곡선, 창문의 완자무늬, 나지막한 돌담, 생나무울타리 등 손쉬운 전통을 십분 살려 나가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을마다 고을마다 그 나름의 개성과 고유미가 넘치는 가운데 비능률과 낙후성이 말끔히 지워진 이름그대로의 새로운 농촌취락이 이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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