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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한달도 안남겨놓고 전국적 시위, 파업에 브라질 몸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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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a pra quem?”(누구를 위한 월드컵인가?)

월드컵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대회를 반대하는 구호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이 지난 15일(현지시각) 브라질 전역을 가득 메웠다. 이날 페르남부쿠의 주도이자 월드컵 개최도시인 헤시피는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변했다. 총으로 무장한 강도들이 시내 상점과 식당은 물론 운행 중인 버스에도 들이닥쳐 승객들의 금품을 약탈했다. 일부 마을에서는 문닫은 전자제품 상점 등을 동네 주민들이 통째로 털어가기까지 했다. 실제로 해가 지고 난 직후인 저녁 6시쯤 기자가 저녁 식사를 위해 시내로 나가봤지만 식당과 상점 대부분이 일찌감치 문을 닫았고 지나다니는 행인이나 차량도 거의 없었다. 거리엔 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된 무장 군인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 불법 시위를 막아야 할 지역 경찰이 근무조건 개선과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3일째 파업을 이어가는 바람에 약탈 등 각종 범죄가 저질러지는 상황이 벌어져도 당국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날 월드컵 개최 반대 시위는 헤시피 뿐 아니라 상파울루ㆍ리우데자네이루 등 전국 50여곳에서 열렸다. 시위대는 월드컵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복지 예산을 늘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파울루에서는 금속노조원 1만5000여 명이 할 동안 조업을 중단했다. 공립학교 교사와 고속도로 관리업체 근로자, 건설 노동자 등도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시위자들은 ‘월드컵의 사망을 애도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조화 바구니를 들고 행진하다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는 길목을 점거하며 밤새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정부가 월드컵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복지와 교육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리우데자네이루에선 흥분한 시위대가 도시 간선도로로 뛰어들어 이동중인 차량들을 파손하고 운전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도 버스터미널 등 도시 주요 시설을 차지한 시위대가 밤새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 TV 방송사들은 헬기까지 동원해 전국 주요도시 시위 모습을 생중계했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시위 참여 독려 분위기가 점점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SNS상에서는 브라질 월드컵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VemPraPua(거리에 나오세요)’ ‘NaoVaiTerCopa(월드컵은 필요 없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시위를 독려하는 한편 시위와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공지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여전히 월드컵의 성공 개최를 자신하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개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모든 폭력시위에 대비할 것”이라며 “경기장과 공항, 도심 거리 곳곳에 치안 인력을 총동원해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과 달리 국민들의 여론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현지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라’가 브라질 국민 2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 중 41%가 월드컵 개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지난 2월 조사에 비해 3%p 상승한 수치다. 가뜩이나 대회 준비가 부진한 가운데 국민들의 호응까지 점점 옅어지면서 브라질 정부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헤시피=고석승 기자 gokoh@joongang.co.kr
[AP·신화=뉴시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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