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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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요새 말로 바꾸면 사람은 죽어서 훈장을 남긴다고나 할까.
아득한 옛날에는 훈장이란게 없었다. 그러니 명예를 보장받는 길은 이름 밖에 없었다.
요새는 장한 일·훌륭한 일을 하면 갖가지 훈장이 따르게 마련이다. 군인은 무공훈장, 산업의 역군은 산업훈장. 그리고 문화에 공헌한 사람은 국민훈장을 받게 마련이다.
이 밖에도 보국훈장·수교훈장·건국훈장·근정훈장·새마을훈장·문화훈장·체육훈장 등등 없는 것이 없다.
훈장의 가지 수가 많은 만큰 타는 사람도 많다. 해마다 1천여명씩이나 훈장을 타고 이름을 남긴다.
해마다 훈장 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강하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훈장이 사람의 배를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훈장 중에서 제일 높은 것은 무궁화대훈장. 이것을 지난 67년에 일본에 발주하려고 했을 때 한 개당 1백만원이었다니까 지금 시세로는 적어도 2백만원쯤은 될 것이다. 그것도 막상 판다면 얼마나 받게될지 모른다.
지난해에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영국의 「가터」 훈장을 팔려고 내놓아 말썽을 빚은 적이 있다. 이때의 값은 4천만「엔」이었다. 「가터」 훈장은 「빌로드」로 만든 「가터」. 이것을 묶는 「핀」만이 금이니까 실제 가격은 몇 푼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형의 상치가 그만큼 높을 뿐이다.
그런가하면 「노벨」상의 「메달」을 팔겠다는 광고도 작년에 미국의 한 신문에 나온 적이 있다. 그게 얼마로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금값만 받고 팔지는 않았을게 틀림이 없다.
이렇게 보면 과연 훈장은 타 볼만도 하다. 한번 타면 본인은 물론이요 몇대 후에까지 큰 밑천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은 훈장을 타기 위하여 이름을 떨치려고 했을 법도 하다.
하나 우리네는 그렇지가 못하다. 최근의 신문 보도를 보면 우리 나라에 하나뿐인 국악 예술 학교를 설립했던 박헌봉씨의 유족이 집 한간 없이 하루 8백원의 막벌이로 생계를 이어가며 있다고 한다.
고인은 죽어서 훈장을 남겼다. 한개도 아니고 두개, 그것도 같은 문화 훈장 중에서 제일 격이 높은 금관장의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그러나 훈장이 배를 불려주지는 않는다. 훈장이 보장하는 명예도 한 때뿐, 그렇다고 훈장을 비싸게 사가겠다는 사람들도 없다.
결국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허울 좋은 훈장만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따지고 보면 남 좋은 일을 해줄 뿐이다. 훈장을 남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는 안 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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