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송대의 그림<작자는 미상> 『노정쌍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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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삭이 패어 오른 갈댓잎 아래는 잔잔한 천수다. 헝클어져 이울어 뵈는 잎사귀와 끝이 물에 잠겨 있는 두어줄기의 순, 그 아래 조약돌들을 가지런히 비쳐 보이는 맑은 물에 가을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한쌍의 물오리는 저편에 다부룩한 한 무더기의 풀섶으로 감싸여 누항의 인간사 같은 것과는 도시 관련이 없어 보인다. 갈대의 줄기와 잎사귀는 일일이 윤곽을 그은 후 그 안에 설색하는 형근진채법으로 착실히 표현된다. 물오리와 물 속의 조약돌, 풀섶이 이루는 자연의 정경은 조화를 입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조화(자연)를 스승으로 삼는다』든가 『물상의 근원』을 밝히려하는 물리탐구의 경향은 되도록 주관이 배제된 객관적 사출에 충실하려 하였던 것이다.
송대 이후의 이러한 회화의 한 사조는 산수화의 경우를 포함해서 조선시대 초기 화단에 크게 영향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곽희 풍의 산수를 조술한 안견이나 이 그림과 거의 다름없는 풍을 보이는 사임당 신부인의 노안도 같은 경우가 그러한 예다. 신부인의 마음을 끌었을 그러한 옛 그림 앞에서 지금 낡은 것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는 어느 것보다도 친근하고 정겨운 화폭인 것이다. 【맹인재<한국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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