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참사」…피해줄인 "불신중 다신"…세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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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례없는 참극을 빚었던 이리역 폭발사고의 뒤언저리에는 세가지의 기적같은 「불행중 다행스런상황」이 있었다.
월동천막으로 참담했던 그날을 애써 잊으려 하면서 정착의 꿋꿋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리시민들은 세 요행이 없었더라면 더 큰 비극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세 기적이란 사고시간에 바로 도착키로 되어 있었던 두 여객 열차의 연착과 시민들의 피해를 줄인 축구중계, 폭발지점의 암반이 깊었다는 우연이다.
사고시간 (9시12분쯤)4분 뒤에는 전주발 군산행 687호 완행열차가들어 오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평소 연착이 거의 없던 이 열차는 5km떨어진 대장역에 머몰러있었다.
또 10분뒤에 도착하는 서울발 남원행101호 특급열차도 2km쯤 접근한 것을 이리역 송석준조역이 1km나 뛰어가 아슬아슬하게 정지시켰다.
그리고 이리역에서 40분뒤에 출발하는 전주행692호 완행열차도 개찰이 늦어 승객이「플랫폼」에 나와있지 않았었다.
또 사고당시 한국·「이란」 축구중계로 많은 시민들이 다방이나 가정등에서 TV를 보았기 때문에 희생자가 적었다는 뒷얘기들이다.
평소처럼 역전이나 삼남극장거리와 역전통등 중심가에 통행인이 붐볐더라면 고층건물에서 떨어진 유리와 간판, 벽돌등으로 사상자가 훨씬 컸을것은 뻔한 일.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이리지방이 땅속깊이까지 암반이 별로없는 기름진 토질이라는 것이다.
이리역폭발사고현장은 25t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깊이 10m에 너비 30여m의 웅덩이가 파여져 1만여「루베」의 흙더미가 분출됐다.
이같은 끈기있는 점토질 때문에 무서운 폭발력을 다소 약화시킨 것이 사실이라고 폭약전문가들은 말했다.
만약 여기에 암반이 깔렸더라면 폭발력이 위로솟고 돌덩이가 인근주택에 날아 떨어졌을것이라는 것이다.
이 폭발로 인근 화차등이 70여개나 넘어지고 5, 6t씩되는 쇠불이가1km이상 날아간것에 비춰 암반이 깊었던것이 피해를 줄인 요인의 하나였다고 했다. 【이리=이??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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