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만 노리는 70년대 작가도 많다-『오늘의 문단진단』중 김우종·김주연씨의 글을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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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동안 『오늘의 문단 진단』「시리즈」를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다.
11월11일(일부지방 12일자) 김우종씨의 글은 이른바 70년대 작가군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극찬 일변도의 내용이었고, 11월4일(일부지방 5일)자 김윤식씨의 글은 계간문학지의 이상비대 현상에 대한 가벼운 진단이었다. 김윤식씨의 글과 함께 이재선씨의 『문학비평은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김주연씨의 반론이 실려있었다. 거기 이런 대목이 있다.
『…월평 등에서 비평가가 흡사 작가의 「세일즈맨」노릇을 하고 있는 인상이 있다….』
이에 대하여 김주연씨는 그것은 비평가의 양식에 문제라고 전제하고 『구테여 월평의 일부인 이상 비평가는 그가 평가하고자 하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만약 문학비평 아닌 광고의 인상을 주었다면 비평가가 선택한 언어가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것은 그 비평가의 능력에 속하는 문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솔직하게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비평가의 능력에 속하는』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도 의도적으로, 정실주의에, 광고의 역기능을 떠맡고 나선 일이 없다고 우리는 추호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피차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가.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책을 만들어놓고 그 책을 좀더 많이 팔기 위하여 비평양식을 통해 특정한 작가를 지나치게 부각 선전함으로써 그 결과 우리문학의 방향을 오도해버리는 과실을 범했다고는 볼 수 없는가.
요즘 일부 70년대 작가들이 지나친 인기주의 내지 상업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부쩍 심해졌다. 알다시피 이 말은 오늘의 일부 70년대 작가들이 고작 말재주나 피부적인 말초주의를 가지고 상업주의에 편승해 나감으로써 그들의 문학을 안이한 소비문학으로, 일종의 고급한 「딴따라문학」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지적과도 같은 뜻이다.
이것이 일부 비평가들의 충동이나 조작에 의해 이루어진 현상이라는 혐의는 없는가. 영자얘기, 순자 얘기를 써서 책 내고 영화에도 팔고 하여 재미 좀 보게 되니까 옳거니 이게 제법 괜찮구나, 내가 최고로구나, 이렇게 제분수를 잃어버리고 날뛰는 현상.
이것을 우리는 일부 비평가들이 그들의 고등한 수법을 통해서 충동거리고 조장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보고 그 책임의 일단을 이들 비평가들에게 물을 수는 없겠는가 하는 것이다.
몇몇 문학지의 요란한 편집태도와 일부 무분별한 「저널리즘」의 태도에도 책임의 일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제 겨우 단편 몇개를 선보인데 불과한 신인을 무슨 천재나 되는 것처럼 추켜세우고 신문연재를 시키고, 별로 관심거리도 될 것 같지 않은 얘기를 화제에 올려 소란을 피운다.
가령 몇몇 문인이 시골로 낙향을 했다고 하자.
그뿐일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자유여서 얼마든지 시골로 내려갈 수도 있고, 또한 올라올 수도있다. 무슨 뜻이 있어 시골로 내려갔다고 하여도 그 또한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다고 「저널리즘」은 그것을 화제에 올려 소란을 피우고 당장 또한 쑥쑥 얼굴을 내밀고 하는가. 큰 뜻은 있어 시골로 내려간 「등신처사」가 말이다.
70년대 작가군과 그들의 작품이 「붐」을 일으키고있는 그 부분적인 배경을 나는 대충 이런 정도로 파악하고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으리라. 왜냐하면 때로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며, 또 조금씩 시정해 나가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는 다른 더 많은 소중한 작가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쩌다가 우연히 김주연씨의 글이 눈에 띄어서 그것을 실마리로 잡았을 뿐 이 잡문이 김주연 개인을 염두에 두고 씌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명기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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