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민족성과 보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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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화의 달인 10월 한 달을 기해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민속놀이들이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문화운동이라는 것이 어찌 10월 한 달에만 국한되겠느냐 생각되지만 이를 통해 기층문화의 저력배양과 보편적 문화가치의 수용작업이 한결 활발해 질 수 있다면 더 없는 보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세대의 한국인들이 당면한 문화적인 과제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민족문화와 세계문화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조화하고 재창조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문화적·정신적 자아확립의 과제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보편적 과제와의 원숙한 통일의 필요가 제기한 「테마」라 볼 수 있겠다. 특히 그 중에서도「민족적인 것」에의 복고적인 회귀지향이 근래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의 무질서했던 외래사조 유입에 대한일종의 주체적 반성의 표현이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몇 해 사이엔 각종 전통예술과 민속놀이들이 대거 재발견되는가하면 각처의 귀중한 사적과 문화재들을 새로이 복원하는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가산 오광대 놀이라든가 송파 산대놀이·남사당놀이·안동 차전놀이 등은 모두 이기간의 탐구적인 연구와 활동을 통해 새롭게 재발견된 것들이다.
그뿐 아니라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각종 고유문화 유산과 민속자료들 역시 빈번한 대형 경연대회와 「그룹」활동을 통해 새로이 부흥되고 확산되고 있는 것 같은 기운이다.
특히 가면극·판소리·시조·국악·춤·전승사적 등 몇몇 분야의 복원과 부흥상은 가위 전통문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한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국학탐구와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돼 나가야할 것임은 물론이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잊어선 안될 일은, 전통예술이나 민속놀이의 복원이 단순한 외양적 이식이나 복고취미 또는 관광이나 박물 취미에만 휩쓸릴 가능성을 극력 배제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우리가 과거의 전통예술이나 민속놀이를 굳이 오늘에 재생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의 우리 생활과 현실에 어떻게 하나의 「힘」으로서 작용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문화란 생활을 떠난 관념 속에서 별도로 존재하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총괄이며 그 자체일진대 전통문화의 계승이란 것도 오늘의 구체적인 삶과 무연한 「게임」으로만 간주될 순 없는 것이다. 탈춤이면 탈춤, 고싸움놀이면 고싸움놀이, 농악이면 농악, 판소리면 판소리가 도대체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 어떤 적극적 관계를 이룩하여 「오늘의 문화」로 재창조될 수 있는 것일까.
이 근본적인 물음이 철저히 해명되지 않는 한 「전통」은 그야말로 「전통」으로서만 단절되어 한낱 「행사」속에서만 공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단절과 그 극복의 「다이내믹」한 과제를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올바르게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오늘의 「행사」를 내일의 「문화」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민족문화와 세계문화, 「민족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과의 원만한 조화의 필요성이다. 부도덕한 퇴폐풍조의 무비판적 수용이 환영할만한 일이 못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통에의 회귀가 세계로의 지향을 자칫 둔화시키는 것만은 경계해야할 일이다.
곁들여 기왕에 문화의 달을 보내는 이 기회에 통영 갓·궁장·화장 및 남사당의 꼭두각시·살판 등 노령의 인간문화재들이 일단 타계했을 경우 그 전승이 문제시되어있는 몇몇 희소분야에 대해서도 차제에 각별한 관심이 고취되어야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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