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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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철학자「세네카」는『너의 말을 행동으로 증명하라』고 갈파한 일이 있었다.「네로」황제의 교사였던 그는 모반혐의를 받아 자살로 생애를 끝냈다.「세네카」도 더 옳고, 더 좋은 행동에는 미치지 못한 셈이다.
세상에는 옳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옛 선비들은 그런 사람을 두고『결코 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게나마 하는 것이 낫다』고 충고한다. 행동은 사고의 소산이기 앞서 책임의 소산인 것이다.
『팡세』(명상록)의 작가「파스칼」은 사람의 행동을 두고 이렇게 풍자한 일이 있다.『사람은 천사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다. 불행한 사실은 천사의 행동을 하면 좋을 사람이 짐승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투기와 요령이 통하는 사회일수록 용기 있는 사람보다는 비겁한 사람이 더 많다.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옹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과를 따기 위해서 사과나무에만 오르는 것이 아니고 배나무에도 오르려는 것이 옹졸한 사람들의 판단이다. 용기에 약하고 자기 교활함에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세익스피어」는 그의 희곡『줄리어스·시저』에서 겁쟁이를 이렇게 흉보고 있다.『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단 한번 죽음에 직면한다) 우리는 요령과 약삭빠름이 처세의 기교로 통하는 세상에서도 때 때로 의외의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바로 엊그제 서울 남대문시장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어느 무명소방관의「휴먼·드라마」가 그 경우다.
그는 27년 동안이나 소방관에 몸바쳐 온 56세의 가장이었다. 세 자녀의 가장으로 범인이라면 쉽사리 불길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범인이 하는 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지 않은 것 같다.
진정한 용기는 자기가 모든 세인의 앞에서 행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안 보이는 데서 하는 것을 두고 말한다. 책임도 역시 그런 것 같다. 자기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둠 속이든, 밝은 곳에서든 언제나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야 할 것이다. 중국의 고대 사상가 추남 자는『용기가 없다는 뜻은 남보다 먼저 겁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당해 의를 잃는 것을 말함이다』고 설파했다. 그것 또한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려운 일이다. 용 자는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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