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점령의 조국을 버렸던 불 화가 「폴·크레」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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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뉴스」의 초점이 「샤갈」의 90세 생일에 쏠린 뒤안길에 「폴· 크레」의 회고전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나치」의 독재를 원망하던 끝에 조국을 버린 탓인지 생전의 발자취를 거의 남기지 않았던 그의 회고전은 비록 남불의 소도시「생·폴·드방스」의 조그만 화랑에서 열리고 있지만 뜻 있는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인간의 꿈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했다고나 할 「크레」의 세계에서 역설적이지만 또한 무한한 다양성과 율동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역시「크레」의 위대한 예술성을 이야기 해준다.
사실 그의 예술의 문을 열자면 무적 까다로운 문지기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명한 색감과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정교한「데생」속에 숨겨져 있는「크레」예술의 야수성을 발견해내기란 간단하지 않은 까닭이다.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건조한「사하라」사막 속에 예쁜 꽃과 뱀들을 심은 것에 비유할수 있을 것이다. 그가 「테마」로 삼아 그려내려는 대상을 통해 반복되고 단순화된 작품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천태만상의 변화와 풍성함을 보여주는 점이 정말 놀라울 정도다.
흔히들 대부분의 예술은 모방에서 출발한다고들 하지만 「크레」만은 모든 바람을 철저히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작품의 배경을 이루어 지탱해 주는 이론이나 기법을 답습하지 않고 돌연변이로 생긴 산물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점과 선의 반복 내지 복합성 단색화 속에서, 이 단순한 것 같은 그의 작품 속에는 바로 「크레」가 그리워했고 소망했던 대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크레」만이 예술가로서 살았던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이번 회고전은 신음하고 흔들리며 또 명상하고 움직이는「다이내믹」함이 있어『움직이고 있는 인간의 꿈』을 보여준데 뜻이 있다는 평자들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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