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무명생활 끝, 최고 전성기 개그맨 정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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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하에게 2004년은 각별하다. MBC ‘코미디 하우스’의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얻은 인기몰이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개그맨으로,배우로, 사업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정준하와의 속 깊은 이야기.

개그맨 정준하, 이제야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

개그맨 정준하, 이제야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
불과 두 달 만에 벌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9년을 한결같이 개그맨으로 활동했지만 일찍이, 생전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루에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만 6~7개.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인터뷰는 1000건도 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매니저의 필요성을 처음 느꼈어요. 이전만 해도 제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는데 10월 중순부터 서서히 일이 들어오더니 11월 정도 되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없던 매니저, 코디 등 식구가 한꺼번에 늘었어요.”

오랜 활동 기간에도 변변한 인기작이나 유행어가 없는 그의 별명은 ‘독한 맛에 6주’. 그가 투입되는 코너의 대부분이 6주를 버티지 못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에게 ‘인기’라는 것을 알게 해준 ‘노브레인 서바이버’는 9개월째 유지하고 있는 코너임과 동시에 그가 끔찍이 싫어했던 ‘독한 맛에 6주’라는 별명도 무의미하게 만들어주었다.

강남의 가라오케 2곳 운영하는 사업가

잠시 방송일을 그만두면서 집에서 눈칫밥 먹는 신세가 됐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타 쓰며 지내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97년 포장마차를 차린 것. 자신의 신체 특징을 살린 ‘오리 궁뎅이’란 포장마차를 강남에 오픈했다.

“일단 안주 맛있고, 대한민국 연예인들이 하루에도 몇 명, 몇 팀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물이 좋아서 줄을 길게 늘어선 날이 많았어요. 가게에 연예인들이 많다고 해서 ‘방송국 대기실’이라고도 불렸을 정도였어요.”

연예인 포장마차 1호였던 그가 성공하자 1년도 채 안 돼 주변에 30여 개의 크고 작은 포장마차들이 생겨났지만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2년 정도 열심히 돈을 번 그는 포장마차에서 과감하게 손을 떼고 가라오케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적으로는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사업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정신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어요. 보는 사람들마다 ‘돈 잘 벌면서 사업은 왜 하냐?’, ‘방송은 취미로 하냐?’는 등의 빈정대듯 물어보는 소리들이 듣기 싫었어요.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고 할까요? 내가 나중에 꼭 코미디언으로도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그런 오기가 들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003년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닌 논리적 바보로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그의 ‘내가 바보라는 편견을 버려’라는 유행어는 대본에 있던 내용이 아닌 애드리브에서 나온 히트작. 그는 “사회자인 표영호씨가 자꾸 바보라고 우기자 나도 모르게 ‘내가 바보라는 편견을 버려!’라고 쏘아붙였던 거예요. 제가 그동안 참고 하지 못했던 메시지 같은 말이었는데… 그게 유행어가 됐어요.”

새해에는 단짝 이휘재와 연예기획사 차릴 계획

2001년 2월에 생긴 인터넷 다음의 팬 카페는 지난해 8월까지 700여 명 정도였고 현재는 2만여 명을 육박한다. 인기 검색어 1위, 개그맨 인기 순위 1위라는 타이틀도 가져봤고, 그의 음성이 담긴 휴대폰 벨소리도 인기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꿈’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정준하. 어느새 그는 ‘기본적 예의를 갖춘 개성 있는 캐릭터의 코미디언’이라는 겸손한 꿈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요. 행복하니까 자꾸 ‘오버하지 말자’ 혼잣말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요. 좀더 솔직해지면 당장 몇 시간 뒤가 걱정되고, 내일이 걱정되고, 다음주가 걱정되고 그래요. 인기는 물거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현재를 즐기려고요. 열심히 생활하면 행복이 유지될 수 있겠죠.”

인기를 얻게 되면서 생전 아는 척 안 하던 후배며 동료들이 친한 척하는 모습이 제일 민망하다는 그는 절친한 친구인 이휘재와 연예기획사를 차릴 생각이다. 후배 양성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대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재밌게 일해보자는 각오로 시작할 계획.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코미디언을 업으로 삼게 된 그는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오버할 줄 알고, 적당히 자신을 과시하는, 쇼맨십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가 둔하고, 바보 같다는 선입견을 버리세요! 선입견을 버리면 똑똑한 바보가 된답니다!”

기획 : 이창훈(여성중앙) | patzzi 윤소영
기사제공 : 팟찌닷컴 (http://www.patz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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