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까지 코치 … 일상이 된 '빅데이터 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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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대학생 김모(24)씨는 최근 여자친구와 다투는 일을 줄이는 방법 하나를 찾았다.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 내용·형식을 분석해 인간관계를 조언해주는 T애플리케이션(앱)이다. T앱은 대화 주제, 특정 단어 사용 빈도, 메시지의 길이와 답신 속도 등을 토대로 친밀도를 분석해준다. 제작사는 10만여 명이 참여한 대화 내용 6억 건을 분석해 서비스를 만들었다. 김씨는 “만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여자친구에게 더 신경 쓰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주로 사용하던 빅데이터가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병원 방문 기록, 근무시간, 메신저 대화 등 쉽게 지나치는 일상생활을 축적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데이터 메이커 앱’ 덕분이다. 11일 EMC 디지털유니버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생성된 디지털 정보량은 4.4ZB(1ZB는 1조GB)로, 앞으로는 2년에 두 배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4.4ZB는 태블릿(128GB)에 분산 저장한 후 태블릿을 쌓으면 지구~달 거리의 6.6배가 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각종 스마트 기기 활용이 일상화되면서 개인의 활동까지 디지털 정보로 생성·가공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예컨대 병원을 언제 방문했는지,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지는 따로 메모하지 않는 한 기억하기 어렵다. M앱은 자신이 간 병원 이름과 날짜 등 다양한 방문 기록을 정리해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병원정보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다른 사람이 많이 추천한 병원, 가장 가까운 병원 등의 정보도 제공한다. X앱은 수시로 달라지는 자녀의 체력측정 결과를 데이터화하고, 이에 맞춘 식단이나 보완해야 할 운동 등을 처방해준다. 출퇴근 시간을 빅데이터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Y앱은 출퇴근 기록과 함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 인터넷 주소 등을 저장하고 e메일·페이스북 등에 전송한다. 혹시 생길지 모를 연장근무 관련 분쟁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황진욱 에이디벤처스 대표는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계속 개방하면서 앞으로는 이를 활용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할 전망”이라며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분야별 맞춤정보 형태로 제공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주요 앱 개발사는 영화·맛집·술·뉴스 등 사용자의 취향이나 구매 이력을 분석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상품을 추천하는 개인화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S앱은 자신이 마셔 본 술에 평가를 하면, 다른 괜찮은 술을 추천해 준다. 도수가 4.9도이고 종류가 에일(Ale)인 ‘호가든’ 맥주에 평가 점수를 남기면, 비슷한 5.3도의 도수에 에일 종류인 ‘에딩거 헤페’ 맥주를 추천해 주는 식이다. 음식점 추천 서비스인 P앱, 영화추천 서비스인 W앱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음식점·영화를 추천해준다. 지금까지는 추천 서비스가 타인이 평가한 곳을 순위별로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면, 이젠 각 개인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키 퓨얼밴드와 소니 스마트밴드, 조본 업24 같은 헬스케어 기기는 개인의 운동 데이터를 모아 앞으로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할지 알려준다. ‘킨다라’라는 앱은 여성의 체온, 생리 주기 등 신체 정보를 입력하면 임신 가능성이 큰 기간을 알려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제 빅데이터가 일상생활에도 적용돼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생활은 물론 개인 건강관리까지 도와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에선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생기고 있다. 황종성 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전략센터장은 “빅데이터가 요긴하지만 사람만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정형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빅데이터에만 의존한다면 기계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오히려 인간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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