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씨 요르단서 詩 보내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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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활동을 위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바그다드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박노해 시인이 현장의 느낌을 담은 시를 한 편 보내왔다.

연일 폭격이 이어지고 있는 바그다드에도 봄은 오고 있고 삶은 계속된다. 박 시인은 비록 그 현장 한복판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이라크 접경지역에서 흘러나오는 생생한 증언과 시적 상상력으로 이번 시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바그다드의 봄 -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바그다드의 밤중에도
연인들은 몰래 만나 마지막인 듯 서로를 애무하고
무서워 우는 아이에게 엄마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포탄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섯구름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다시 축구를 하고
아잔 소리가 울리면 다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동생은 어제 산 운동화를 바꾸러 나가고
둘째 형은 낡은 자동차를 고친다고 기름투성이고
누이는 저녁을 준비하며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인다

지난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려 죽은
아홉 살 아지자의 피가 말라 붙은 벽돌 틈에서
노란 민들레는 무심히도 꽃망울을 피워 내고

포연 속에서도 새들은 알을 까고
올리브 나무가지에 꽃은 피어나고
밀밭은 푸르고 대추야자 열매는 봉긋이 오르고
골목에 널린 흰 빨래는 눈부시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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