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 청와대 인근 농성 … KBS 보도국장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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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환영 KBS 사장이 9일 오후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새벽부터 KBS 사장 사과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유가족들은 길 사장의 사과를 듣고 안산으로 돌아갔다.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이날 오후 사임 의사를 밝히며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최승식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KBS 간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시작된 논란이 내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에 비교해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9일 사임 의사를 밝히며 길환영 사장의 사퇴도 요구했다.

 ◆보도국장 "길환영 사장도 사퇴해야”=김 국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된다”며 “보도의 중립성을 책임지고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KBS 사장은 확실한 가치관을 지닌 이가 돼야 한다”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한 길환영 사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 사장은 김 국장의 기자회견 직후인 오후 3시50분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으로 찾아가 사과하며 “논란이 됐던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문제의 발단은 김 국장이 지난달 28일 KBS 과학재난부와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었다. 지난 4일 언론비평지 ‘미디어오늘’은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를 인용해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회식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전체적인 내용 거두절미”=이에 대해 김 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28일 KBS 근처 중국집에서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세월호의 참사는 안전불감증이 원인이었다’고 말하며 안전불감증과 관련한 뉴스 시리즈를 제작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가운데 교통사고로 한 달에 500명 이상 숨지고 있는 만큼 교통사고에 대해 경각심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전체적인 내용을 거두절미한 채 KBS 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해명했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뉴스 앵커들에게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데 대해선 “당시 사망자보다 실종자가 더 많았던 상황에서 상복 비슷한 의상을 입으면 실종자를 사망자로 결론 짓는 것 아닌가. 그로 인해 절망에 빠질 수 있으니 검은 옷을 지양하자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김 국장의 발언 소식이 8일 안산의 정부 합동분향소에 전해지면서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격분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4시쯤 분향소의 KBS 취재부스를 찾아가 현장 철수를 요구했다. 유가족들은 조문을 위해 분향소를 찾은 KBS 이준안 취재주간에게 “발언 당사자인 보도국장이 직접 와서 사과하라”며 “이날 오후 8시30분까지 보도국장이 오지 않는다면 KBS 본사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보도국장의 현장 사과는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격분=이에 유가족 100여 명은 8일 오후 8시50분쯤 자녀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을 항의 방문하기 위해 분향소를 떠났다.

KBS 본사 앞에서 이들은 경찰 9개 중대 900여 명과 대치하며 김 국장의 공개 사과와 즉각 파면, 길환영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오후 11시30분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의 중재로 대표단 10명을 구성해 본사 건물 내에서 대기했지만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9일 오전 2시쯤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하겠다”며 청와대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길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KBS 기자들 사이에서도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를 두고 갈등이 불거졌었다. 보도국 막내 격인 38~40기(2~4년 차) 기자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를 반성하는 취지의 글을 7일 오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자 다음날인 8일 KBS 성창경 디지털뉴스국장이 사내 게시판에 “반성이라기보다 비난이다. 선동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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