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공과의 대화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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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미묘한 변동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중공과의 직접 접촉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의 평화유지 문제는 기본적으론 북괴의 남침기강에 대한 한국의 억지노력이지만 넓게는 미·일·소·중공이 다같이 관계되는 국제문제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선 평화공존에 관한 남북의 합의뿐만 아니라 그러한 합의를 뒷받침하기 위할 미·일·소·중공의 외교적 여건조성이 요구되는 소이다.
한국 측으로서는 일찍부터 이점에 착안하여 6·23선언을 전후해서 소·중공·동구권에 대해서도 문호개방의 원칙을 천명한바 있었다.
이러한 외교자세 전환은 부르기 쉬운 대로 실리외교라 해도 좋고 자주외교라 해도 좋다. 이름이야 어떻든 그것은 주한미지상군 철수라는 최근의 정세와 관련해 한층 더 현실적인 외교과제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주한 미지상군 철수를 보전하는 여러 가지 요건의 하나로 외교선의 다변화와 소·중공의 대한자세 변화를 유도해 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소·중공의 대한자세변화를 유도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한정적인 의미밖엔 가질 수 없다. 아무리 관계를 개선해 보았자 그보다는 역시 한미유대와 한일협력이 더 긴요하고 기본적인 축일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하튼 작게는 어로문제와 항로개설문제에서부터 크게는 전쟁억제문제에 이르기까지 소·중공이 우리와 허심탄회한 자세에서 대화에 임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자체는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특히 「캄차카」근해에의 입어권 획득을 위한 대소교섭과 대륙붕개발과 관련된 대 중공의 타진은 다른 무엇보다도 시급한 사안이다. 국제해양법의 비공식초안은 자국의 2백 해리 전관수역에서의 타국의 입어권과 관련해 『전통적인 조업 국의 입어를 허용해서 그 나라의 경제적 혼란을 극소화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소련이 2백 해리 전관수역을 선포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한국의 『전통적인 조업권』을 전면 봉쇄하려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 해양법의 기본취지에 따라서라도 그 문제는 어떻게든 적절한 협의를 통해 해결되어야만 하며, 한·소가 상호 미수 교국이란 점은 그러한 직접협상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간주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다만 여기서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소·중공이 과연 북괴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제쳐놓고라도 한국과의 직접 대화에 쉽게 나서려 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북경과 「모스크바」가 북괴남침을 원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그 동안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많이 주장되어온 터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북괴 대남 전략의 틀을 이탈하거나 초월하면서까지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대한 접근을 당장 시도할 용의마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확언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소·중공은 북괴 적인 경쟁에 민감한「라이벌」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의 대소·대 중공 외교 탐색은 불가불 장기적인 것일 수밖에 없겠고 조용한 노력이어야만 하겠다.
북괴의 교조적 남침노선은 객관적으로 비현실적이며 소·중공의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 한국은 이미 전후 4반세기를 통해 급 성장한 엄연한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실체라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대한인식은 하루빨리 현실화·합리화되어야만 한다는 것 등을, 시간을 두고 착실히 주지시켜 나가야할 일이다. 그런 사전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성숙한 다음이라야 실무적인 담판의 길도 틔어갈 것이다. 대소·중공외교 탐색은 또한 너무 공개적으로 널리 떠들어도 그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생겨난다. 북괴의 방해공작이 그만큼 더 극렬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문제에 있어선 주한지상군을 철수하려하는 미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중공의 태도변화를 종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구조의 정착에 진력해야 할 미국이 당면한 의당한 외교적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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