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관리와 양곡수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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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통화관리에 어려움을 겪게되자 그 부담이 농민에게로 돌려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보도에 따르면 양곡기금적자가 지난 연말현재로 3천억원을 넘고 있으며 올해만도 추가 한은 차입이 양곡기금에서 2천5백억원이나 될 것이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양곡수매가격인상억제·보리증산억제·정부보유양곡 판매가격인상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인데 물가 및 통화문제와 식량문제를 직결시키려는 발상에는 전통적인 편견이 내재되어 있음을 뜻한다.
즉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도시보다는 농촌에, 공업분야보다는 원시산업에 부담을 전가시켜 온 것이 종래의 잠재화된 정책전통이었다. 이러한 전통에서 근년 벗어남으로써 이제 겨우 식량자급을 위한 터전을 잡았다고 하겠는데 식량자급의 기반을 확고히 잡기도 전에 다시 낡은 공책관습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소득구조로 보거나 공업화추진의 강도로 보거나 2중 곡가 제도를, 보편적으로 실시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었으며 본 난은 2중 곡가 제도에 찬의를 보이지 않았었다.
오히려 고 곡가 정책의 성과가 뚜렷해지고 있는 지금 기본적으로는 2중 곡가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재정부담을 완화시키는 한편 극빈자에 대해서만 싼값으로 정부양곡을 배급해주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원칙적으로 말해서 2중 곡가제를 폐지하되, 정부판매가격을 극빈자용과 기타방출용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운영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근자의 납세풍토는 놀라우리만큼 개선되어 세수실적이 항상 예산보다 월등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협조정신에 대해서 재정도 응분의 절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세수초과가 있다든지 세계잉여가 있을 것 같으면 곧 추가사업을 벌여 이를 써버리고자 하는 재정운용관행을 지속하는 한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경제의 경기조절수단으로서 재정기능을 중시하는 선진경제의 경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재정이 쓸 것은 다 쓰고 경기나 통화문제의 애로를 가장 약한 부문에 부담시키려는 것은 지나친 일방적 편법이다.
그러므로 세수초과분이나 세계잉여 분을 추경예산재원으로 잡기에 앞서 양곡관리기금의 적자를 메우는데 쓰는 방법을 이번만은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산당국이 예산편성 때에는 언제나 재정의 경기조정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취지를 밝히면서 현실적으로 그러한 여유가 생기면 이를 회피하려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겠다.
만일 지금과 같이 고도성장을 위해서 투자수준을 유지하고, 수출신장을 위해서 해외부문의 통화창조기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재정은 계속 추가지출을 계획한다면, 결과적으로 이들 고압요인을 완충시킬 부문은 내수산업과 학업부문밖에 남는 것이 없게된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계당국은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시 한번 검토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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