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여신억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융에 대한 변칙적이고도 돌발적인 규제가 경제순환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함을 생각한다면 이를 가급적 회피할 수 있도록 미리 배려하는 것이 정책의 소임이다.
근자 해외부문의 통화증발원인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국내여신한도를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그러므로 통화 및 여신의 급속한 팽창을 막기 위해서 높은 한계지준 율을 적용할 수는 있으며 과거에도 한 차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계 지준 율을 통화성 70%, 저축성 430%로 적용하는 과격한 조치가 나오게된 이유를 통화당국은 스스로 반성해야 마땅할 줄로 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과격한 조치는 그 동안 통화관리에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더욱이 계절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과거의 통화공급방식에는 모순이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서 올해부터는 연중을 통해 고른 통화공급을 하겠다고 주장하던 포대당국으로서는 그러한 방침을 년 초에 밝히지 않음만도 못할 만큼 통화를 제대로 관리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늘어난 통화 및 국내여신을 이제부터라도 억제해야 하겠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여신의 억제로 말미암아 일반 대출이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에 이를 때 어마한 부작용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다.
우선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의 괴리현상이 더욱 심화됨으로써 자금편재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유동성공급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대금 난이 가중되어 사채금리를 자극하게 되는 이중구조화가 불가피하게 된다. 이러한 이중구조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도 제기되는 것이며 그것이 직접·간접으로 생산과 물가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개별기업의 경우 급격한 금융환경의 변화는 결국 자금수급 면에 결정적인 타격을 줌으로써 사채의존이냐 부도냐를 선택하는 궁지에 몰리게된다. 그러므로 금융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깊은 상처를 받게되는 것임을 주목해야한다.
더욱이 투자확대를 진행 중에 있는 기업은 갑작스런 금융애로에 직면함으로써 공기지연이 불가피하고 그럼으로써 투자효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된다.
후일 금융이 완화될 때 비록 투자가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공기지연으로 파생되는 투자비용 증대 때문에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어 가격인상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또 과격한 한계지준 율을 얼마나 지탱해 나갈 수 있겠느냐하는 현실문제로 보더라도 이번 조치는 합리적이 아니다.
기왕에 너무 많이 늘어난 통화량이나 국내여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경제는 비가역성임을 존중해서 급격한 조치보다는 단계적인 조치를 시정하는 것이 순리다. 통화관리가 경제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수단임을 상기할 때 생산과 물량 및 경제순환에 커다란 지장을 주는 과격한 수단의 선택은 본말을 뒤바꾼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친 금융억제가 불과 한 두 달도 못되어 반전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결과적으로 「M·프리드먼」 이 말하는 정책으로 말미암은 교란요인 조성을 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중한 정책운영이 요청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