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행락의 언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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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거푸 몇 주일 비오는 주말을 보냈는데 내일은 오랜만에 쾌청하리라는 예보다. 올해 꽃놀이 상춘은 많이 놓쳤지만, 요 며칠 이른 더위를 맞고 보니 어디라도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들이다.
이제 행락은 특히 도시인들에겐 점점 필수적인 것으로 돼 가는 느낌이다. 직장이라는 틀에 박혀버린 생활의 그 답답함, 그리고 또 누구나 왜 그렇게 바쁜지 이유도 캘 수 없이 쫓겨다니는 동동걸음. 한 지붕 밑에서도 여유 있게 가족이 오붓이 얼굴을 대할 수 없는 생활들이기에 주말의 하루쯤 지붕 밖을 나서 행락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대생활인 것 같다.
최근 국제관광공사가 조사한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41% 이상이 1년에 한번이상 관광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하루 관광의 행락도 포함됐는데 주목할 것은 대도시일수록 가족동반의 놀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서구인들이 그렇게 숨막혀 하는 도시생활이 우리에게도 옮겨지고 있다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므로 요즘 우리들의 행락이라는 것이 옛 선조들처럼 계절을 즐기는 풍류라기 보다는 도시생활을 하는데 있어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는 하나의 활력소 구실이며 또 하나의 생활인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발처럼 부릴 수 있는 선진국 사람들처럼 가족끼리 오붓한 곳을 마음대로 찾아 나설 수 없는 것이 우리 형편이고 보면 자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원지 소풍으로 나들이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 서민들에게 있어선 쉬러 나가는 일조차 사람이 몰리는 복잡한 행락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가장 행락의 요구가 절실한 도시인들의 하루이고,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는 우리들의 여건이기 때문에 더욱 이런 행락 속에서 남을 의식하는 「예의」 나 「에티케트」가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세속적인 시달림에서의 해방. 이것은 곧 남에게 시달림을 주지 않는다는 약속 위에서만 한껏 맛볼 수 있는 자유이다.
우리는 꽤 이렇게 집을 나와 돈을 쓰면서까지 나들이를 해야 하는가. 우리를 시달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로를 적으로 보는 경쟁심, 그러면서 무섭게 길들여진 무관심. 바쁜 도시생활의 소음, 숨막히는 공기, 틀에 박힌 생활의 무료함,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한 사회를 사는 외로움…이런 것들을 떨쳐 버리려고 사람들은 집을 나서는 것이다. 더욱이 오붓한 가정의 샘물을 마시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모처럼 훈훈한 보살핌을 안겨주는 그것도 이 행락의 뚜렷한 목적임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하루,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시민도덕에서 한 걸음 나아가, 남을 친구로 벗하여 모르는 사람에게 눈인사를 하고 팔에 안긴 아기에게 다정한 웃음을 익혀주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일을 조심하고, 그리고 모든 어른이 모든 어린이의 부모요, 선생이라는 마음을 쓴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인간이 기계조각처럼 돼 가는 세상에서 서로를 아끼고 삶의 보람을 다시 찾아내는 훌륭한 활력소가 될 것이다.
말썽 많은 놀이터의 바가지상술도 마찬가지다. 하루만이라도 숨통을 트고 싶어 나가는 시민들에게 그런 것으로 해서 불쾌감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당국의 당연한 할 일이요,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섬세한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강력하다는 것은 이런 곳에게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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