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적 배신의 정치 「쇼」|절실한 한일관계 양식의 재정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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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중의원에서의 대륙붕협정안의 비준 실패는 한일간의 장래관계에 상당한 불협화음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에 의한 대륙붕의 단독개발이라는 기술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발상의 재정립이라는 포괄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한국에 대한 일본의 행태는 파렴치·침략·강화·배신의 반복사였다. 문화적 후진국이던 고대 일본은 항상 한반도를 통해 대륙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였으면서도 일본 무인집단의 대한인식은 한반도·대륙침략의 교두보라는 선에만 머물러 왔었다.
삼국시대나 고려말에 비롯한 왜구의 연안침탈은 급기야 조선왕조 중엽 때의 대규모 침략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것은 다시 한말의 식민지 정책과 36년간의 강점시대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한국과 한국인들은 강인한 저항운동으로 일관하면서도 번번이 대일 강화와 정상관계 회복에 인색해 본적은 없었다. 임진란 후의 덕천가강과의 화해가 그러했고 지난 65년의 한일 국교회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침략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지만 일의대수한 이웃과의 우호와 협력에는 언제나 허심탄회할 수 있는 것도 한국인의 마음이요, 자세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개인간의 처신이나 마찬가지로 군자로서의 예절과 신의를 가지고 임해야한다는 것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고였고 국가간에도 합리적인 공동이익관계에 바탕한 선의의 교감이 흘러야한다는 것이 한국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분명히 파악하건대 일본과 일본인의 자세는 그러한 도덕적 대외인식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를 격한 오늘에 와서도 추호의 수정이나 반성도 없음을 보게된다.
한반도는 일본인에 있어 대등한 선린이 아니라 언제나 갉아먹어야 할 이익선상의 수동체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의 의병들을 마구 학살했고 황후를 시해했으며 총독부를 설치하여 헌병의 총검으로 이 민족을 무자비하게 억눌렀다. 그래놓고 훗날에 와서는 개발을 해주었느니, 근대화를 도와주었느니 하는 엉뚱한 망발을 곧잘 일삼았다. 전후에 와서 일본의 대외 활동은 소화 군벌의 팽창주의 대신 유례없는 이기적 상업주의의 형태로 변신되어 나타났다. 『팔현일자의 군국 일본』이 『1억 총 주식회사』의 무자비한 경제동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이웃 나라를 유린하던 「사무라이」정신이란 것은 오늘날에 와선 「아프리카」의「정글」에서 「시베리아」의 동토에 이르기까지의 악착스런 「악덕상인」근성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제신의니, 외교적 책임이니, 호혜성이니 하는 양식인의 상식은 아무리 보아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가는 곳마다 무역적자를 만들어놓고, 협력이란 이름 아래 고리의 상업차관만을 들여보내는가 하면 소리를 얻기 위해선 산업쓰레기라도 서슴지 않고 수출해버린다.
전후 4반세기를 통해 일본은 순전히 미국이 베푼 「무상의 안보」와 한국인의 피 어린 휴전선 방어 덕택에 경제대국으로 급성장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국교정상화 이후에 있어서의 일본의 대한 자세와 외교 감각은 손톱만큼의 질적 수정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소리를 위해선 한낱 「이익선」에 불과한 한국인에의 도덕적 관계를 내팽개치고 곧잘 지난날의 습성인 배신·왜곡·편향·상업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툭하면 독도에 대해 시비를 걸어오고 걸핏하면 중·소에는 꼼짝 못하면서도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선 알쏭달쏭한 「제스처」를 감추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연간 대일 무역적자 10억 「달러」도 경제협력이란 말의 본의를 되씹어보게 만든다. 대륙붕협정안을 둘러싼 정치「쇼」도 마찬가지다. 한국으로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했고, 기다려 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기다려보았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무슨 변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이제 우리는 이것을 계기로 65년 이후의 대일 인식과 관계형식을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다다랐다. 어디가 어떻게 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인가. 한국과 한국인도 이제는 자랄 만큼 자라버린 어엿한 자주국민이다. 들과의 어업 협정·2백 해리 문제·대륙붕개발·독도 기선 문제·자본도입과 무역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나라의 기본적인 인식 문제에 있어 무언가 당당하고 강력한 한국인의 자세를 천명할 때가 왔다고 본다. <필자=본사 편집논설위원 유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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