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배경은 진짜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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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자건 작가건 미국에서「퓰리처」상을 받는다는 것은 최고의 영예인데다 대개의 경우 수입이 상당히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배우의 출연로가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뿌리』의 작가「앨릭스·헤일리」가 18일 저작부문의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뿌리』를 둘러싸고 「헤일리」와「런던」의 「선데이·타임스」지가 벌이고 있는 시비에서 「헤일리」가 정신적인 승리를 거둔 효과를 갖는다.
「콜럼비아」대학의 「퓰리처」상 심사위원들이 최종심사를 위해서 모임을 가진 것이 4월8일인데 바로 이틀뒤에 「선데이·타임스」는 「마크·오타웨이」기자가 쓴 기사에서 『뿌리』의 사실성에 도전을 했다. 「오타웨이」기자는 「헤일리」가 『뿌리』에서 자신의 선조의 고향이라고 밝힌 「갬비아」의 「쿠푸레」 마을을 직접 방문하여 1주일동안 취재를 한 것을 토대로 「헤일리」가 그 마을에 살던 「쿤타·킨테」라는 사람의 7대손이라는데는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헤일리」는 자기가 「쿤타·킨테」의 후손이라고 단정한 것은 그마을의 구비사가라고 할만한 「지바·호과나」영감의 고증에 따른 것이라고 『뿌리』에서 서술했다.
『뿌리』에 의하면 「헤일리」의 7대조상 「쿤타·킨테」는 1767년 영국인 노예상인의 손에 의해 미국가는 노예선을 탔다. 이런 배경때문에 영국신문이 『뿌리』의 사실성을 따지고 나서니까 자연히 동정이 「헤일리」에게로 쏠린다.
많은 역사가들이 「오타웨이」기자의 주장에 반대하고 「헤일리」를 지지하고 있다. 「퓰리쳐」상 심사위원들의 결정은 「헤일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성명이라고 하겠다. 『수백만명의 미국흑인들은 비열한 방해를 받음이 없이 우리들의 과거를 재현 할 수 있는 자유도 없단 말인가?』라는 「헤일리」의 절규는 미국에서 듣기에는 참으로 실감이 난다. 미국흑인들의 눈에는 「오타웨이」는 현대판 노예선의 선장같이만 보인다. 【워싱턴=김영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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