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온 세계가 이제는 봄이다.
우리 나라는 엊그제 한식과 함께 정식으로 봄이 되었다. 서양도 오는 일요일이 부활절이니까 이날부터 봄에 들어간다.
서양의 여성들은 이날부터 겨울옷을 벗어버리고 봄옷으로 갈아 입는다. 영국에서는 이날부터 「서머·타임」에 들어간다. 「프랑스」에서는 또 2학기가 끝나고 2주일의 방학이 시작된다. 이것은 미국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부활절은 전 세계를 통한 일양 내복의 기쁨 속에서 벌어진다. 이래서 푸짐하고도 흥겨운 잔치가 여러날 계속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을 맞기 위하여 옛 신자들은 40여일 동안이나 금욕적인 절제 생활을 해야했었다.
지금은 이런 사순절의 상징들은 잊고 자칫하면 부활절의 즐거움만을 누리려하기가 쉽다. 사순절 동안에 가장 흔히 부르는 기도에 『재는 재로』라는 귀절이 있다. 재란 지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도 이런 재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행복·불행도 한때뿐이다. 이렇게 재처럼 허망한 인생의 희비애락을 위해 저지르는 온갖 죄악들을 뉘우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 사순절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 젊은 귀족 「네플류도프」는 하녀 「카추샤」를 유혹하여 아이를 낳게 한다. 이 때문에 쫓겨난 그녀는 차차 악에의 길에 빠지게 된다.
여러 해가 지나자 「네플류도프」에게도 양심이 싹튼다. 그는 유형수가 된 「카추샤」를 따라 자기도 「시베리아」로 간다. 그는 완전히 딴사람으로 부활되는 것이다.
이렇게 「네플류도프」가 되살아나는 계기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부활되기까지를 그린 복음서를 읽은 다음부터 생겼다.
부활절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네플류도프」의 부활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활절의 정신은 반드시 기독교 신자에게만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부활절에는 또 하나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를 잡아들인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풀어주려 했었다.
그는 제일에 수인을 한명 풀어주는 관례를 이용하려했다. 마침 「그리스도」와 함께 잡힌「발라바」라는 살인 강도가 있었다.
「빌라도」는 군중을 향해 「발라바」와 「그리스도」 둘 중 누구를 풀어줬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때 민중이 선택한 것은 「발라바」였다. 결국 「그리스도」를 죽인 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손을 벌리던 민중이었다. 교훈을 이렇게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는 부활절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