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 말하자 놀라운 일이 … 말기암 19세 서튼의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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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잘했어요(Thumbs up)’다! 불행하게도 이번 장애물은 너무 멀리 있다. 이렇게 갑자기 끝내게 돼서 안타깝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건 내가 현 상태를 편안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아달라. 여기까지가 전부다. 그래도 좋은 삶이었다. 아주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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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영국의 19세 청년 스티븐 서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앞으로 누군가 글을 쓴다면 가족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곧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암시였다. 엄지손가락을 세운 사진 속의 그에겐 산소호흡기와 수액줄 등 의료장치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위중한 병세란 게 역력했다.

 서튼은 15세 때 장암(腸癌)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치료 불가능한 말기란 사실을 확인하고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46가지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중 33가지를 해봤다.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코끼리를 안아보기도 하고 드럼 공연도 했다. 버킷 리스트를 성취할 때마다 ‘잘했어요’란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세운 사진을 올렸다.

 같은 처지에 있는 청소년 암 환자를 위한 모금 운동도 그중 하나였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인생을 즐기는 일을 꾸준히 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달라”는 차원이었다. 처음엔 1만 파운드(1750만원)가 목표였는데 나중엔 100만 파운드로 올렸다. 22일까지 그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57만 파운드 정도만 모였을 뿐이었다. 그는 “누군가는 모금 활동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호소’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그의 메시지를 읽은 수십만 명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냈다. “끝나야 끝난 것”이란 동료 암 환자의 위로도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그저 살다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넌 세상을 바꿔놓았다”는 상찬도 이어졌다.

 유명인들도 동참했다. 영국 코미디언 제이슨 맨퍼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응원에 나섰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이마에 ‘서튼을 위해 5파운드를 기부해 달라’고 쓴 메시지를 붙이고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모금액이 치솟았다. 하루 만인 23일 목표치를 돌파했다. 이어 상승세가 계속됐다. 29일 낮 12시(현지시간) 현재 12만8000여 명이 309만 파운드를 기부했다.

 서튼의 상태 또한 호전됐다. 그는 이틀 만에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22일만 해도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고 했다. 직전 오른쪽 폐가 작동을 멈추는 위중한 상황을 겪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 후론 매일 한 차례 정도 근황을 전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28일엔 산소호흡기를 뗀 사진을 공개했다. “여전히 암으로 엉망인 상태다. 그러나 숨쉬긴 한결 편해졌고 당장 별다른 증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 초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란 걸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살아있는 매초가 특별하다.”

 그러곤 감사의 메시지도 남겼다. “이 순간 무시무시했던 주를 지나 아직도 살아있음을, 삶이란 이 멋진 여정을 축하한다. 또 모금액이 300만 파운드를 넘어선 것도 축하한다. 거대한 섬즈 업!” 이날 사진 속의 그는 환자복만 입었다 뿐, 영락없는 장난기 가득한 청년이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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