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의 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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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쌀의 기원은 아직도 모른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도의 동북방지역 등에서 쌀의 흔적이 유물로 발견되긴 했지만 그 연대는 갖가지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점차 인도 기원설을 정설로 생각하고 있다. 우선 기후가 미작에 적당하고, 「오리자· 사비타」라는 쌀은 적어도 4천년 전부터 야생하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비록 탄화한 상태의 것이긴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그와 같은 추정을 하게된 것이다.
고대「이집트」의 왕릉에서도 보리나 밀의 씨앗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그 보존상태가 어떻게나 완벽했던지 3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싹이 텄다는 기록이 있었다. 미국의 풍물지리지 「내셔널. 지오 그래픽」에 실린 그 사진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이번 일은 꽃의 경우에도 있었다.
고대「이집트」의 왕릉에서 발굴한 이상한 꽃씨를 심어본 것이다. 얼마 후에 피어난 꽃은 한송이 수련화.
이처럼 완전한 종자는 아니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옛 집터에선 기원전 5, 6세기께의 쌀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있다. 서울대 고고학「팀」이 경기도 여주에서 탄화한 형태의 쌀을 발굴했다.
도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기원전5, 6세기, 청동기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쌀의 기원은 이제까지 북방설, 혹은 남방설로 분분했었다. 남방설은 동남아지방의 쌀이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유인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방설은 중국대륙을 거쳐 쌀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생각이다.
일본학자들은 김해패총에서 나왔던 쌀이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쌀의 기원보다 늦은 것으로 그들은 남방 전래설을 고집했었다.
식생활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나의 인간 생존사 와도 관련이 있다. 의식주의 기원은 GMS히 문화의식에 까지도 깊은 영향을 준다. 더구나 식생활에의 영향은 그 어느 경우보다도 깊고 넓다.
일본학자가 남방설을 고집해 온 것은 어떤 분문 마저 엿보이게 한다. 물론 북방설이 남방설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나름의 고유한 식생활을 갖고있는 것이다.
최근 고고학은 과학적 분석방법의 발달과 함께 모든 문화양식의 기원을 구명하는 작업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쌀의 북방 전래설을 입증할 분석자료를 제시한 것도 그런 성과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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