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정부, 언론 탑압했다 1500억 소송 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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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의 위성 방송사인 알자지라가 이집트 정부를 상대로 1억5000만 달러(약 1550억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28일(현지시간) “알자지라가 이집트 정부의 탄압으로 방송사업에 큰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카타르·이집트의 관계는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를 대리하는 런던의 로펌 ‘카터-럭’의 캐머런 돌리 변호사는 “지난해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된 후 알자지라와 소속 기자들에 대한 공격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알자지라는 2001년부터 9000만 달러(약 930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모두 몰수당했다”며 “이집트 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정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정부는 알지지라가 무르시 전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인 편향 보도를 해왔다며 지난해 9월 취재진 3명을 추방하고 카이로 지사도 폐쇄했다.

돌리 변호사는 “카이로 지사의 방송시설과 장비 구입비, 4개 채널 운영비, 이집트 정부에 납부해온 전파사용료, 인건비 등 투자금 9000만 달러에다 이집트에서 방송을 못하게 됨으로써 발생하게 된 미래 손실을 합해 1억5000만달러의 보상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알자지라는 1999년 이집트와 카타르가 체결한 투자협정상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따라 보상을 청구했다.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송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로 넘어간다.

알자지라와 이집트 정부의 다툼은 무르시 전 대통령의 축출을 계기로 본격화 됐다. 미국 CNN에 대항해 1996년 설립된 알자지라는 카타르 국왕이 최대주주로 범 이슬람적 시각에서 아랍인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전파해 왔다. 그런데 이집트 정부는 알자지라가 조직적으로 무르시 전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호주인 피터 그레스터, 캐나다계 이집트인 무함마드 아델 파흐미, 이집트인 바헤르 무함마드 등 3명의 알자지라 기자를 체포했다. 이집트 검찰은 “이들 3명이 이집트의 국익을 해치는 거짓 보도를 했고 테러 단체로 지정된 무슬림형제단에 돈과 장비, 정보를 제공했다”며 기소했다. 허가 받지 않은 방송장비를 사용한 혐의도 추가했다. 이집트 매체들은 무슬림형제단을 비판하며 정부의 알자지라 탄압을 거들었다.

알자지라 취재진은 “카이로 지사가 폐쇄돼 호텔에서 방송을 준비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은 “이집트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고 있다”며 알자지라 기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국제앰네스티(AI)도 지난 1월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이후 이집트에서 활동하는 언론인들의 위험과 활동 제한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인권상황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상관 없다”며 재판을 진행 중이다. 로이터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85) 전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권좌에서 쫓겨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집트 민주주의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자유에 대한 희망은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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