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기자의 현장 르포] 미안하다 못난 어른이라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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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못난 어른이라서….’

25일 진도 팽목항 상황실 앞. 3m가량의 게시판에 빼곡히 붙어있는 메모에는 어른들의 미안함이 가득했다. 이들은 지켜주지 못한 어린 학생을 그리워했다. 실종자 가족부터 친구, 주민, 외국에서 온 교포까지…. 노란빛 포스틱, 새하얀 A4용지, 검은 도화지 등 색색의 편지들은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건너편 노란 버스 한켠에도 커다란 스티로폼위에 7~8개의 노란 리본이 펄럭였다. 그 안엔 ‘MIRACLE’이라는 선명한 글귀가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기적처럼 태어났으니 기적처럼 돌아올 거에요. 힘내세요. 곧 모두 웃을 수 있길 바랄게요.’
‘할 수 있는게 이것 뿐이라서 미안해요. 기적은 꼭 일어날 거에요.’
‘모두가 기도하고 있어요.’

광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손 모씨(48)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있는데 비슷한 또래아이들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며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 기적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민간잠수부 윤 모씨도 “잠수부 자격증이 있어 선배들과 함께 찾아왔는데 아직 한명도 물에 못 들어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빨리 수습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의 주말은 전쟁터가 휩쓸려간 듯 고요하다. 소조기를 끝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마지막 한줄기 희망은 잦아들고 있다. 농성을 펼치던 가족들은 하얀 천막 속에서 ‘무기한 기다림’에 돌입했다. 마이크를 잡은 가족대표단은 “단 한명이라도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흘 넘게 울면서 기다렸다”며 인양이 아니라 구조를 계속 기다릴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바쁜 손놀림으로 무료 급식 봉사를 하던 자원봉사자들도 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 종교단체 회원은 “십여 명의 회원들이 침몰된 세월호가 있는 쪽으로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다”며 아이들이 부모 품으로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25일 정오, 세월호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 한 켠에는 한 아버지가 조그마한 바윗돌에 웅크려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30분 후 그 자리엔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가 애끓는 마음을 담은 종이배 편지를 띄웠다.

지금 어른들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진도=이진우 기자 jw85@joongang.co.kr
사진=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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