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한도조정 '고무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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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회사원 K씨(28)는 지난 2월 A카드사로부터 "3월부터 현금서비스 한도가 6백만원에서 5백만원으로 1백만원 줄어든다"는 통보를 받았다. K씨는 "6년 전 카드를 발급받은 이후 현금서비스를 자주 이용했지만 한번도 연체를 한 적이 없는데 아무런 사전 동의 절차 없이 멋대로 한도를 줄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원 P씨(36)는 이달 초 B사(은행의 카드부문)로부터 "현금서비스 한도가 다음달부터 월 30만원에서 1백80만원으로 늘어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1년 넘게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협의도 없이 한도를 어떻게 늘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B사는 지난해 7월부터 한도를 상향 조정할 경우 회원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금융감독원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회원의 이용한도를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하는 바람에 회원 개인의 중.장기적 자금 운용 계획에 혼선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연체회원과 신용불량자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금감원에 따르면 LG.삼성.국민.외환 등 9개 전 업계 카드사들은 2001년 말 2백13만원이던 회원 1인당 한달 평균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를 지난해 말에는 1백72만원으로 1년새 23% 가량 줄였다.

카드사 별로 현금서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회원이 전체 회원의 절반 가량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현금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회원 중 대부분이 이 기간에 K씨처럼 일방적인 한도 축소를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한두달 사이에 한도가 50% 이상 갑자기 축소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카드사들은 "연체 경력.다중 채무 여부.사용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정하지만 최근 연체율이 갑자기 올라가 수시로 한도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문제는 카드사들이 돈을 떼일 위험을 줄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단기간에 한도를 갑자기 축소하다보니 힘겹게 카드 대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 정상 회원들이 대금을 연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데 있다.

따라서 한도 축소 때는 사후 통보(고지)만 하면 되는 현행 규정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카드 회원들은 "한도를 늘릴 때보다 줄일 때 충분히 협의토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속수무책으로 연체자가 되는 경우가 줄어들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갑작스런 한도 축소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있겠으나 한도 조정은 카드사의 고유한 리스크 관리 업무여서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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