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작인 고교평준화 시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작년 말에 발표된 77학년도 대학입시 예비고사의 결과는 그간 실시되었던 당국의 고교평준화시책이 분명히 실패였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번 대입예시는 이른바 고교평준화시책 이후, 서울과 부산등 대도시에서 추첨에 의해 고교에 진학했던 학생들이 처음으로 치른 시험이기에 그 결과가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거리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발표된 결과를 놓고 볼 때 이제는 이른바「고교평준화」시책과 그 도구가 되었던 추첨배정 식 고교진학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재검토가 가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주장이 상당한 근거를 갖게 된 것이라 하겠다.
문교부가 극히 일부만 밝힌 자료에서 이번 고사결과를 단편적으로 훑어보더라도 그 결과가 예년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역력히 알 수 있다.
첫째로, 이번 고사의「커트·라인」이 크게 떨어진 점을 들어야 하겠다. 대입예시가 벌써 9회에 접어들었으나 합격자 정원을 대폭 늘렸던 72년을 제외하고는「커트·라인」이 계속 상향추세에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에 비추어 이번의「커트·라인」이 작년보다 2점 정도나 떨어진 것은 분명히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합격자들의 평균 점수가 2백7·4점으로 지난해의 2백10·8점보다 3·4점이나 떨어진 점이다.
시험문제가 별달리 어려웠던 것도 아닌데 이같이「커트·라인」도 떨어지고 합격자의 평균점수도 떨어진 것은 수험생 전체의 학력저하로 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째, 재수생 합격률이 훨씬 높아진 점을 주목해야 하겠다. 사회문제화 한 재수생 대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있으나 재수생들은 올해 예시에서도 강세를 보여 전체응시자의 32%인 9만3천4백 명이 응시, 4만5천3백 명이 합격함으로써 전체합격자의 38%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과는 바로 평준화시책에 따라 무시험 진학했던 금년 졸업예정자와 그 이전 졸업자사이의 실력격차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평준화시책의 결과 학생들 사이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도 진학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널리 퍼졌으며, 그 결과 학생들의 학습의욕과 경쟁의식이 현저히 저하되고 이에 따른 장기적인 학습결손에 따라 학력저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시험 진학의 혜택을 입은 5대 도시의 학생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기타 지역 학생들의 학습의욕마저 전반적으로 저조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혹 이번 시험의 결과 서울과 부산지역 출신자의 합격률이 51·3%, 57·3%로 기타지역 50·9%보다 높고 합격자중 1위부터 9위까지가 모두 서울시내 고교출신이란 점을 들어 고교평준화시책의 성공적 귀결이라고 논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나 이는 객관성을 인정하기 곤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즉 서울과 부산출신의 성적이 높았던 것은 올해에만 나타난 특이한 현상이 아니며, 환경여건 등 이 모두 유리한 이 지역의 특수성을 외면한 생각일 뿐이다.
또 그것은 총 응시자 29만 명 가운데 65%를 차지한 서울출신 학생가운데서 12만9백 명의 가장 많은 탈락자를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뿐더러 이번 시험의 결과 종전과는 달리 상위권과 하위권이 각각 늘어난 현상도 소홀히 다루어선 안 되겠다. 그것은 평준화시책이 애초에 학생간·학교간·지방간의 평준화를 의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 어느 하나의 평준화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생한 증거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이른바「고교평준화」의 허구를 청산함으로써 우리 고교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하기를 다시 촉구하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