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김두종 박사<서울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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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높고 귀하고 엄숙한 것이다. 어느 활동이나 계획보다도 매우 중한 것이며 어느 의식이나 가치보다도 앞서기 때문이다.
오늘도 벌써 12월24일이 되었으니 1주일만 지나면 이해도 다간 셈이다. 나의 연치도 이제는 여든 둘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난 1년 동안에 무슨 보람있는 일이라도 한 것이 있나 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았으나 이렇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얼핏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생의 고귀성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만 셈이 되었으니 세상을 대할 면목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1년 동안을 아무 노력 없이 헛되게 그저 보낸 것은 물론 아니다. 나 자신으로서는 세상에 살아가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지속하여 왔다.
그러면 그 노력은 무엇인가. 이제 그 노력의 한 토막을 추려서 젊은 친구들에게 해를 보내는 인사말을 하는 것도 아주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람들은 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이런 속담의 탓인지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 제 잘난 체 하고 제 아니면 아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법석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각 사람들의 재능이나 기교는 서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잘나고 못난 것은 서로 비교할 성격의 것이 못 된다. 어디까지나 모든 인간의 두뇌는 서로 평등하다는 점에서 다만 각 개인들의 가정이나 사회의 한 때의 환경에 따라 더 배우고 덜 배울 수 있는 차가 있을 뿐이다. 내가 상대방보다도 아는 것이 더 많다고 하여서 뽐내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장점을 서로 받아들이려는 교양과 아량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노력함으로써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는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각 개인이 지닌 재능이나 기교의 실력에 중점을 두지 않고 학력 본위로 모든 대우 조건을 단정해 버린다. 심지어는 학력의 등급으로써 그 사람의 인격까지도 함께 포함시키려는 경향조차 보인다. 아마 우리 젊은 친구들이 내 잘났다고 뽐내는 것도 오늘 우리 사회의 이러한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인 현실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런 점에 있어서도 본 문제의 해결은 시급한 과제의 하나다. 젊은 친구들의 이그러진 자아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며 올바른 비판을 촉구하기 위해서도 더욱 긴박한 문제다.
오늘날 우리들이 골치 앓고 있는 청소년 지도 문제, 재수생 교육 문제 등은 본 문제를 해결하는 부수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지엽 문제의 해결에만 신경을 허비하지 말고 내년부터는 큰 용단을 내려 기본 문제인 학력 등차의 고시 채용 제도를 철폐하고 실력 본위의 원점에 돌아가서 합리적 방법이 채택되고 젊은 친구들의 어긋난 자아의 인식이 정상화되도록 개혁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지난해의 남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내년부터 모든 이그러진 과거를 깨끗이 씻고 희망이 밝아 오는 새해가 되길 갈망해 마지않는다.

<약력>
▲1986년·경남 함안 출생
▲1924년·일본 동도의 박사 졸
▲45년·의학박사(만주의대)
▲57년·미「존즈·홉킨즈」대수학
▲47∼62년·서울대의대 교수
▲60년·학예원 종신회원(현)
▲62년·서울대 명예교수(현) 저서=『한국의학사』 『한국의학문화 대연표』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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