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 된 '계약금 전액 회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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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철도공사가 결국 러시아에 계약금조로 보낸 620만 달러 가운데 절반 이상을 떼이게 됐다.

철도공사는 그동안 "계약이 해지된 책임이 러시아 측에 있기 때문에 계약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더욱이 러시아 측이 철도공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제상사중재원에 제소하는 등 강력 대처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재원에 가면 (러시아측)기업의 이미지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계약금 반환협상 결과는 이런 철도공사의 자신감이 공수표였음을 반증하고 있다. 특히 반환금의 집행에 필요한 후속조치 비용 40만 달러까지 물어주겠다고 합의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당초 러시아 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했을 때 러시아 측은 "행정 비용 등 100만 달러 정도를 떼고 520만 달러 정도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나 철도공사 측은 이를 거부했다. "내부적으로 전액이 회수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까봐 우려해서"였다는 것이 철도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결과는 당초 러시아의 제안보다 더 나쁜 쪽으로 났다.

일각에서는 "계약해지와 관련, 우리 측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책임이 새로 불거져 나왔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한다.

실제 이런 분석이 나오게 된 정황은 협상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포착됐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쪽(러시아 측)에서 지출한 행정 비용 정도는 물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리 측에서도 행정 비용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것인지에 대한 협상안을 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철도공사 측이 처음부터 '계약금 전액을 돌려받는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철도공사가 대외적으로 공언했던 것과 정반대다. 결국 철도공사가 사건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자 대외적으로는 "다 돌려받을 수 있다"고 공표하면서 협상 테이블에서는 러시아 측에 떼이는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이 된다.

이 같은 철도공사의 행보를 두고 한편에선 "여론을 의식해 전액 회수라는 연막을 깐 뒤 협상 결과가 예상대로 다 돌려받지 못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협상단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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