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기 부장의 삽질일기] 오늘은, 꽃이 하나도 예쁘지 않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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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얼굴이라도 멀쩡할 때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건져낼 때마다 게시판에는 인상착의를 아디다스, 나이키, 폴로갷 다들 상표로 해요. 우리 애는 내가 돈이 없어 그런 걸 못 사줬어요. 그래서 우리 애 못 찾을까봐갷.

-어쩔까, 어쩔까, 맞네 맞어, 00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아버지가 차가운 벽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오열했다.

-수학여행 전 용돈을 주겠다는 아버지에게 갾내가 식당 일 해서 용돈 벌었어갿라며 마다하던 막내딸이었다... 10년 전 아내와 헤어지는 바람에갷 엄마 얼굴도 모르고 떠난 딸갷

-신발을 보고 우리 아들인 줄 바로 알았어요. 수학여행 전 갻아들, 선물이다갽면서 새 신발을 사줬거든요. 걔가 그걸 신고 있었어요.

이른 시간 적막한 사무실, 신문을 넘기는데 활자가 부옇게 흐려졌다. 더 읽지 못했다. 신문 만드는 일이 직업이고, 뉴스 보는 게 일이지만 지난주부터 하루 종일 벽에서 왕왕거리는 TV에 부러 눈을 주지 않은 터였다.

애기, 식당 일, 엄마 얼굴, 아버지, 막내딸, 못 사준 신발갷

살 냄새 나는 말들, 고단한 삶이 묻어나는 회한 어린 단어 몇 개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봄, 꽃들은 불같이 왔다가 꿈같이 사라졌다. 산하를 한꺼번에 물들이고 썰물 되어 빠져나갔다. 내가 철 잃고 갈팡질팡하는 계절 속에서 조바심을 낼 때 꽃들은 알았던 거다. 저 바다와 이 땅의 넘치는 눈물을 미리 알았던 거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땅속의 얼음이 미처 녹기도 전에, 아지랑이가 제대로 날리기도 전에, 서둘러 제 몸을 사르고 눈을 감아버린 거다.

오늘은, 땅거죽을 이고 일어서는 새싹들이 하나도 예쁘지 않다. 툭툭 새순을 터트리는 나뭇가지가 하나도 장하지 않다, 앞산 가득한 신록이 하나도 벅차지 않다.

불모의 사월, 다시 오지 못 할 어린 꽃들아.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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