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갖춘 권한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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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에 대한 신임과 존경을 전제로 한다는 민 대법원장의 말은 때가 때인지라 더욱 의미심장하다. 최근 국회의 질의 과정이나 항간에서 법관의 양식을 문제삼는 얘기를 적지 않이 들었다. 물론 그러한 외부의 비평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연유한 것일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외부로부터 자주 이런 비평을 듣게 된다는 것은 어느 모로나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 대법원장은 법관이 존경과 신임을 받기 위해선 겸허하고 친절한 자세로, 권한행사에 있어 덕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를 한마디로 법관의 양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헌법에도 규정되다시피 법관의 사법적 판단의 기초는 오직 법률과 법관의 양심뿐이다. 바로 이 양심은 객관성과 타당성 뿐 아니라 인간애와 균형감각까지를 함축한 법관의 전인격적 양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때문에 법문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데 안주하는 재판은 결코 양식을 갖춘 명재판이 될 수는 없다. 법관의 전인격적 양식이 투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재판은 살아있는 재판으로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 스스로가 이를 지키고 몸소 실천하는데서 가능한 것이지 결코 외부로부터 주어지거나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직 양식 있는 재판이 쌓여 법관에 대한 신임과 존경이 축적될 때 사법권의 독립은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리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민 대법원장도 지적했다시피 균형을 잃은 듯한 재판권 행사가 가끔 눈에 띈다.
그 하나의 사례가 국회에서까지 논란됐던 벌금의 노역장 유치 환형 문제다. 보통의 경우에는 환형 유치 하루 당 1천원씩 쳐주는 것을 어떤 경우에는 50만원씩 쳐주었다는 것이다.
이래서 항간에선 어떤 사람은 하루 몸값이 1천원이고 어떤 사람은 50만원이냐는 식의 빈정까지 나돌고 있다. 이는 한낱 감정적인 반응이라고 치지도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환형 유치기간이 최고 3년으로 한정되어 벌금 액이 5억4천7백50만원을 넘을 경우 하루 50만원 아니라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훨씬 미달하는 벌금형의 경우마저 하루 50만원씩에 환형 하는 게 합당하냐 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결구금일수를 본형이 아닌 병과된 벌금형에 산입하는 일 마저 있지 않았는가.
이렇게 되면 당연히 양형의 균형이란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고, 법관의 양식에 대한 논란이 일게 마련이다.
또 다른 사례로 같은 회사를 상대한 동일내용의 배상소송에 대해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을 한 경우가 지적될 수 있다. 물론 판결 그 자체는 당해 사건만에 대한 법원의 의사표시인 만큼 설혹 내용이 같은 것이더라도 사건이 다른 경우에는 판결내용이 다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반된 판례가 하급법원이 아닌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내려졌다는데서 혼선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하급심의 상반된 판결이라면 대법원에서 한가지로 귀일 되기 때문에 혼선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재판부마다 법관 나름의 양식으로 이렇게 자꾸 판례를 바꾼다면 하급법원이나 일반국민은 준거할 기준을 상실하고 말지 않겠는가. 혼선이 있는데서 결코 신뢰는 자랄 수 없는 것이다.
부디 사법부가 법의 지배를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수호자임을 투철히 인식하여 흔들림 없는 양식의 발휘로 국민의 신뢰를 두터히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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