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국봉 체제의 첫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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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의 화국봉 체제는 등장한지 50여 일만에 복건성 등 10여개 성에서 강한 반발을 일으켜 일부 지역에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직면해있다.
이와 같은 사태는 ①강청 등의 「4인방」 강경파를 축출한 현 체제 안에 지도체제 개편 내용을 놓고 분열이 일고 있고 ②강청파 축출의 정당성을 설득시키기 위한 대중운동이 모순에 빠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③강경파의 잔존세력이 반격의 여유를 얻은 것 등의 요인들이 일치하여 일어나게 된 것이다.
화체제 내부의 분열을 시사하는 증거는 이선념의 수상 승진설이 대자보에 의해 보도되었지만 공식화 과정이 지연되자 백지화되고 있는 사실과 선전활동을 선도해 오던 인민일보가 뒤로 밀려나고 해방군보가 화체제의 비호선전에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는 점을 지적 할 수 있다. 이선념의 승진문제는 화국봉 자신의 권력 독점욕 때문이거나 왕동흥·오덕·예지보 등 강경파의 반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일단 권력을 잡은 관료 및 군부 등의 온건파는 모 자신도 장악하지 못했던 당 주석·당 군사위주석 및 수상직 등 3개 최고직위를 장악하고 있는 화국봉이 최소한 그중 하나를 내어 놓도록 간접적으로 종용하기 위해 이선념의 승진을 대자보로 보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국의 공산문제 전문가 「빅트르·조르자」는 해석하고 있다.
처음 강경파 4인방의 숙청을 발표할 때는 인민일보·홍기 및 해방군보 등 3대지의 공동사실로 나왔지만 그후 논조가 화의 당 지도력 강화로 집중되면서 해방군보가 독자적인 논설을 싣고 다른 신문들이 한 걸음 뒤따라 간 것은 해방군보가 대변하는 거부의 입김이 당의 저항을 강압적으로 묵살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4인방을 매도하는 방법 또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화체제는 4인방을 「우파 부르좌」로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명쾌한 이론으로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했고 또 모의 노선에 어긋나는 주장을 해서 결과적으로 모유지 계승이라는 화체제와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한 점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화체제는 그래서 전술을 바꾸어 과거의 권력투쟁에서 전례가 없던 강청 개인의 사생활 폭로라는 치졸스러운 안목으로 강청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에 영합하려 한 감이 짙지만 이러한 방법도 명백한 반주자파인 4인방을 「회개할 줄 모르는 주자파」로 모는데는 별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4인방이 실제로 당파 국가권력의 찬탈을 기도했고 군부와 당 원로에 대한 분파행동을 시도했다는 비판만으로도 충족될 이 권력투쟁의 합리화가 빗나가 혼란사태를 빚게 되자 화체제는 11월28일의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뒤늦게 4인방에 대한 관련비판대상과 방법을 한정하여 『당의 일원적 지도에 따라 폭로·비판하라』고 전열을 가다듬기에 이르렀다.
이 사설은 인민일보에 의한 최초의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4인방 비판지침이었다는데서 화체제가 비로소 당 선전기관을 장악, 그동안의 혼란을 극복할 채비를 마무리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사실은 모택동 사후 벌어진 「4인방」숙청사건을 마무리짓고 화체제의 새로운 지도체제의 단결을 과시하기 위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현재 열리고 있는데서도 드러나고 있어 이 대회의 결과가 극히 주목된다하겠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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