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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같이 침몰한 '신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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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안타까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둘러싼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의 신뢰는 하나씩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은 사고 당시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그들의 지시에 따르던 어린 학생들은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사실 우리는 배나 비행기, 심지어 버스를 탈 때마다 타인의 능력과 직업의식에 자기 안전을 맡긴다. 운행을 책임진 사람들이 기기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직업의식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이런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사고가 날 상황이 아닌데도 사고가 났고, 사고가 난 후에는 승무원들이 승객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하고 자기만의 안위를 위해 도망쳐 버린 것이다.

 사고가 난 후의 정부 대응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초기 대응은 우왕좌왕하면서 심지어 탑승객의 숫자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러한 혼란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높은 분들의 심기를 챙기는 데 더욱 신경 쓰는 것같이 보였다. 어떻게 국민이 이런 정부를 믿고 안심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고 전의 형식적인 안전점검에 대한 의혹, 무리한 증·개축 선박개조 승인에 대한 의혹 등은 공무원들의 낙하산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니,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사실 한국사회의 소위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은 이미 위험한 수준에 다다라 있다. 사법부는 과거에는 해바라기성 판결로 국민의 불신을 받더니, 이제는 ‘튀는’ 판결로 국민을 황당하게 만들기 일쑤다. 검찰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고, 국회나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불만을 지나 냉소, 심지어 무관심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보인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 이어 ‘제4부’라는 언론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에도 황당한 허위 민간잠수부 인터뷰로 혼란을 조장하는가 하면 그 외에도 건전한 상식과 보도윤리에 어긋나는 보도들로 여러 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1996년 출판한 『신뢰』(Trust, 1996, Free Press)라는 책에서,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회적 신뢰가 클수록 경제활동의 거래비용이 줄어듦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당시 후쿠야마 교수는 한국을 사회적 신뢰가 낮은 국가로 분류했었는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신뢰는 오히려 더 나빠진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없으니 거래비용이 증가함은 물론 사회적 갈등의 조정 비용도 천문학적이 되고 있다. 최근의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과 원격진료 등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신뢰가 쌓여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저신뢰(低信賴) 사회가 된 것은 그동안의 성장지상주의가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절차와 과정은 무시해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의식, 깨끗한 실패보다 더러운 성공이 낫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버린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back to basic)’ 것밖에 없다. 물론 이번 사건에서 책임질 사람들을 처벌하고 과거의 구태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을 통해 건전한 시민정신을 불어넣는 일일 것이다. 초·중·고에서 남을 따돌리는 경쟁보다 남과 같이 가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대학도 외형적 성장지상주의를 벗어나 학생 교육 등 본질적인 임무를 충실히 하는 내실화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무신불립 (無信不立)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하게 하며(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라고 답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순서로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군대와 식량의 순서로 들고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民無信不立)”라고 답하였다. 이처럼 수천 년 전에 이미 공자는 사회적 신뢰가 국가 사회의 존립을 위해서 절대적임을 설파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국민의 믿음을 얻기보다 식량과 군대를 얻는 일에만 너무 신경을 쏟은 것은 아닐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