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제53화 사상검사(5)|<제자·선우종원>선우종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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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군정과 공산당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군정에 대해 잠깐 훑어보기로 한다.
군정이 가지는 직접적인 목표는 작전적성과를 저해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행정적인 문제에 관해서 전투원들에게 어떠한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설치되는 일종의「작전수행 보조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본다면 그 지역의 주권은 진주한 점령 당사국-즉 군정 시행 당국에 속하게 됨은 물론이고 이러한 상태는 군정이 실시되는 동안 계속 되는 것이다.
당시 38도선 이남에 설치되었던 미군정청은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국회가 가지고 있는「전시특권」으로 세워진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경우에 미국 헌법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서 대통령은 미국군 최고사령관의 자격으로 미군경청 운영관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미국 국회는 이에 필요한 예산 세출을 승인하게 되어 있다. 군정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은 해외에서 여러 번 군정실시의 경험을 가지고있다.
「멕시코」「쿠바」「푸에르토리코」「필리핀」일본 등이다.
제1차 대전 당시의 군정은 단순히 진주했던 점령군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작전상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지만 제2차대전후부터는 형편이 달라졌다.
즉 극도로 발달된 분업적 작전태세는 군정을 한개의 독립된 전문부문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군정관으로서의 특별한 훈련을 받은 인물이 이 부문-군정을 담당하는 제도가 수립되었다.
각설하고 주권이 원주민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점령군당국에 있다는 점에서 해방 후 이 땅의 민족진영은 그 조속한 철폐를 요구하고 나셨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해방된 이 땅에는 1945년9월9일, 미군의 진주와 더불어 군정이 선포되었고, 1947년6월3일에는「미군정청」이「남조선과도정부」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이의 선포와 더불어 미군정은 만3년만에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편 1945년8월24일 평양에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자 이북 동포들의 마음속에 부풀었던 기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붉은 군대가 북조선에 진주하여 내려진 첫 포고와 명령서란 것을 보면 엉큼하고 기만적이며 감언이설에 불과했다. 그것은 해방 후 오늘까지의 여러 가지 사실들로 입증되고 있다.
소련군정의 포고와 명령서란 것을 보면 엉큼하고 기만적이며 감언이설에 불과했다. 그것은 해방 후 오늘까지의 여러 가지 사실들로 입증되고 있다.
소련군정의 포고와 명령서는 온갖 민족적 슬픔과 불행의 원천이 되는 몸서리치는 예고문이었고, 나아가서는 소련군정의 약탈과 강도 행위의 실시를 다짐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명령서라는 것을 다음에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이율배반적이며 침략적 근성을 밝혀 보려한다.
북조선 주둔 소련 제25군사령관의 명령서
1945년10월12일
Ⅰ, 붉은 군대는 만주에서와 북조선에서 일본군대를 격파하였다.
패배 당한 일본군대는 부득이 항복하게 되었다. 30여년 동안 침략적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북조선은 일본침략자들로부터 해방되었다. 붉은 군대는 약탈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북조선으로 들어왔다.
붉은 군대는 조선에「소비에트」질서를 설정하거나 또는 조선지역을 얻으려는 그런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
북조선 인민의 사유·공유재산은 소련 군사 당국자의 보호 하에 처하여 있다.
Ⅱ,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1, 북조선 구역 내에서 일본침략주의의 잔재를 영원히 근절시키며 민주주의의 초보와 공민자유의 공고화를 자기의 과업으로 내세우는 모든 반일민주주의 단체들의 결성 및 그들의 활동을 허가한다(이하 생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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