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대원에도 경관에 준한 의무 있다"|서울지법 취객보호 소홀에 유죄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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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방범대원들은 비록 그 의무와 책임에 관한 법률상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행사하고 있는 폭넓은 권한에 비추어 경찰관의 직무에 준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이를 태만히 했다면 경찰관에 준 하는 형사처벌을 받아야한다는 첫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 형사지법 합의8부(재판장 심훈종 부장판사)는 19일, 이같이 판시, 취객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죽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 서울 성북경찰서 소속 방범대원 민경치(30) 권명연 피고인(28)에게 유기치사죄를 적용, 징역 1년6월·집행유예 3년씩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 법률상 근거 없이 주민의 자조 단체에 지나지 않았던 방범대원에 대해서도 경찰관에 준 하는 의무와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방범대원의 법률적 신분에 관한 첫해석이다.
재판부는『방범대원들은 주민들이 거둬 주는 돈으로 월급을 받고 파출소장의 지도 관리하에 범죄·재해예방활동을 하고있는 한 주민들과는 고용계약 관계에 있다』고 지적,『이들이 적극적으로 주민을 보호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계약상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유기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6월20일 하오 10시30분쯤 서울 성북구 길음동543 장미주점 주인 주진관씨 (38·상해치사죄로 징역3년·집행유예5년 선고)로부터『주점 앞에 취객이 누워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주점 앞에서 이마와 입술에 피가 묻은 채 술에 취해 신음 중인 김복식씨(49·서울 성동구 행당동224)를 길음동 제1방범초소로 데려와 초소 옆 길가에 뉘어 두었었다.
그런데 이들은 다음날 새벽4시쯤 김씨가 비장파열상으로 숨져 유기치사혐의로 구속 기소됐었다.
숨진 김씨는 사건 당일 평소 자주 들렸던 장미주점에 찾아와 술을 마시고 주인 주씨에게『전에 맡겨둔「왁스」3통을 물어내라』고 따지다 시비가 붙어 주씨로부터 배와 이마 등을 얻어맞고 주점 밖으로 밀려났었다. 주인 주씨는 김씨가 문밖에서『배가 아프다』며 고함을 지르고 버티자 인근 길음파출소에 연락, 김씨를 데려가도록 했던 것.
두 피고인들은 김씨의 사망사실을 다음날 변사체 발견으로 경찰에 보고, 성북서가 단순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가 유가족의 진정으로 검찰이 재조사, 혐의사실이 밝혀졌던 것.
검찰은 주민에 대한 봉사와 범죄 및 재해예방을 임무로 하는 피고인들이 통증을 호소하는 김씨를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든가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주민과의 계약상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므로 유기치사죄에 해당된다고 두 피고인에게 징역2년씩을 구형했었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방범대원이란 주민과 방범위원회간의 계약에 의해 설립된 자조단체로 경찰관을 도와 화재·홍수 등 재해예방과 도난 등 범죄예방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을 뿐 법률상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 취객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다 해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맞섰었다.
형법 제271조1항은『노유·질병·기타사정으로 도움을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의 의무가 있는 자가 유기한때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6천2백 여명의 방범대원이 있고 서울·시경 산하에는 3천5백 여명이 있는데 이들은 동단위 방범위원회가 징수하는 방범비(월3백∼5백원)에서 월2만∼4만2천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이들은 동네유지의 추천으로 관할경찰서의 심사를 거쳐 시경으로부터 임명을 받고(사령장은 없음) 사실상 취객단속·현행범 체포 등 경찰업무의 일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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