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세월호 사고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40대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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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Q 딸 하나를 둔 40대 전업주부입니다.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 슬픔이 마치 내 일같아 속상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고 살아 남은 생존자의 심리적 고통도 큰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낸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재해나 사고로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재해 생존자에게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견디기 힘든 재해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하기 때문이죠. 재해 생존자가 보이는 심리 증상은 다양합니다. 우선 재해의 끔직한 순간이 계속 떠오르는 회상입니다. 공포의 기억이 반복될 때마다 심장이 뛰고 땀이 나는 등 불안 반응이 나타납니다. 불안 반응이 지속되면 건강에 중요한 생리적 반응의 균형이 깨져 불면이나 식욕저하, 또는 거꾸로 과도한 수면이나 폭식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져 결정 능력도 저하됩니다.

 회상이 괴로운 만큼 이를 회피하는 행동이 뒤따릅니다. 사건 이야기를 하거나 관련된 사람을 만나는 걸 피한다는 얘기입니다. 때론 아예 그 기억이 떠오르지 않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삶의 일상적 활동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삶의 의욕을 잃으니, 공부나 일을 하기 싫고 사람 만나는 걸 꺼립니다. 죄책감에 빠지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등 부정적 감정에 빠져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지속된 스트레스가 뇌를 각성시켜 평소엔 하지 않던 무모한 행동이나 공격적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큰 고통을 겪는 재해 생존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우선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빨리 잊고 긍정적 생각을 갖도록 주변에서 인위적으로 마음을 조정하려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존재와 충격적인 경험에 대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인내를 갖고 격려해 줘야 합니다.

 또 제때 균형잡인 식단의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고 나도록 돕는 등 정상적인 삶의 균형을 찾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결정은 뒤로 미루라고 조언하십시오. 꼭 급하게 해야 할 상황이라면 주변과 충분히 상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서서히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으로 경청해주며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공감 어린 경청은 단순히 들어 주고 섣부른 위로의 말을 던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공감은 상대방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는 것, 즉 나와 상대의 마음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며 내 마음의 에너지를 전해주면 상대방에겐 힐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돕는 사람의 에너지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려면 그 에너지가 충분해야 하겠죠. 생존자의 가족도 많이 놀라 평소보다 공감 능력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가족이나 지인의 힘만으로 돕는 게 어렵다 느껴지면 전문가와 만나게 해주세요. ‘시간이 약’인 건 맞지만 초기 대응을 잘 못하면 시간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재해를 겪은 후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 반응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초기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찾아 올 수도 있기에 재해 생존자에 대해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 이제 희생자 유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내는 일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입니다. 더구나 자녀를 갑자기 잃는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별로 인한 슬픔은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심장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를 보면, 심장병이 있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첫 일주일 동안 심장마비 위험성이 얼마나 증가하나 봤더니 여섯 배나 높았습니다. 뇌졸중 위험도 역시 증가했고요. 희생자 유족의 심리적 안정뿐 아니라 신체 건강도 함께 체크해야 하는 건 이런 이유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사별(bereavement) 반응이라 부릅니다. 사별 반응의 핵심은 애도(grief), 즉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슬픔입니다. 고인의 죽음 뒤 나타나는 애도 과정은 일반적으로 네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엔 충격(shock)과 부인(denial)의 과정이 찾아 옵니다. 고인의 죽음을 믿지 않으려 하는 부인의 심리를 보이다가 반대로 상실의 느낌이 강하게 찾아와 슬픔과 그리움의 감성이 나를 압도해 버립니다. ‘쇼크 먹었다’란 말처럼 감정 반응이 회색에서 빨강, 그리고 검정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 사별 후 2~3개월 지속됩니다.

 그러다 지속적으로 고인을 생각하는 시기가 찾아 옵니다. 죽음을 더 이상 부인하거나 과도한 감정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과 대화 대부분이 고인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먼저 간 사람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붙잡아 그 사람을 자기 곁에 계속 두는 거죠. 6개월~1년 이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절망과 우울감의 시기가 찾아 옵니다. 고인이 더 이상 자기 곁에 있지 않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한 후 일어나는 애도 반응입니다. 우울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다 죄책감과 불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각 단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섞여 나타납니다.

 사별의 충격은 죽을 것 같은 충격을 주지만 우리 유전자에는 상실에 대한 회복 능력도 내재돼 있습니다. 사실 사별 경험은 누구나 피할 수 없습니다. 회복 능력이 내재돼있지 않다면 모든 사람이 슬픔에 빠져 살아가고 있겠죠.

 사별한 사람 주변에서는 상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망자 이야기를 계속하면 정서적으로 더 나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떠나간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장례식 기간 동안 찾아준 사람들과 말하기 싫든 좋든 망인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됩니다,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냐, 이렇게 계속 질문을 받고 답합니다. 그 과정에서 상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걸 수용합니다. 슬픔과 그리움을 글로 적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애도 반응에서 일어나는 불안·우울·분노를 함께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또 고인과 연관된 기념일엔 함께 해줘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날이 돌아오면 과거 기억이 몰려 오며 애도 반응이 강하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사별 후 6개월~1년이 지났는데도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애도 반응을 보인다면 전문가 도웅을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처럼 충격의 정도가 상상 이상일 때는 처음부터 전문가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만성 우울증 등 정서적 장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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