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방」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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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애라도 질근질근 씹듯이 살짝 움직이는 얇은 입술가에 냉소가 흐른다. 보이지 않는 뭔가를 쫓는 듯이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 우수가 감돈다.
비스듬히 뒤집어쓴 허름한 중절모자 챙 밑에 견딜 수 없는 고뇌와 고통을 나타내는 주름이 서너 줄 깊이 패어 있고, 그 위에 불길한 그늘이 감돈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짤막한 발을 대지를 누르듯 옮긴다. 체념의 바람이 살짝 인다.
반기에 가깝도록 「장·가방」은 「스크린」속에서 이렇듯 짜릿한 인간미와 「시니시즘」 과 애상을 뿌렸었다. 그도 결국 갔다. 한시대의 막이 내린 느낌이다.
「가방」처럼 한시대의 분위기를 대표한 배우도 드물다. 「카르네」의 영화 『해가 떠오른다』에서 「가방」은 누추한 「호텔」 방안에서 혼자 죽음을 기다린다, 이 때의 그는 소외된 인간, 철저하게 짓밟히고 희망을 완전히 잃은 인간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수많은 「팬」들이 매력을 느낀 것은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시니시즘」의 멋과 끝까지 반항의 자세를 지켜나가는 인간 의지 때문이었다.
「가방」이 그리는 인물들은 모두가 「로맨티스트」다. 그러나 절대로 눈물이며 감상에 젖어들지 않는 차가운 맛이 그를 가장 개성적인 배우로 만들었다.
아무리 연기가 뛰어나도 미남이 아니면 주연이 될 수는 없다. 이게 「할리우드」 영화의 정석이다. 그런데 「가방」은 이 정석을 깨뜨렸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 영화에서는 미남이 아닌 주연들이 많다. 「루이·주베」·「장·루이·바로」―.
묘하게도 이들은 거의 모두 같은 시절에 꽃피던 명우들이다. 같은 시기에는 「아나벨라」, 「프랑솨즈·로제」, 「다니엘·다류」, 「미셸·모르강」 등도 있었다. 모두가 전전의 세대들에게 짜릿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 「스타」들이다.
이들이 다 은막을 떠나고 이들이 상징하는 시대가 바뀐 다음에도 「가방」은 활약했다.
전후에는 그는 주로 암흑가의 두목역을 맡았다.
『망향』의 「페페·르·모코」나 마찬가지로 「갱」도 사회에서 이탈한 인간이다.
결국 그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반항자의 슬픔을 끝까지 그려 나갔던 것이다. 그의 인기가 여전했던 것은 비슷한 「갱」 배우 「험프리·보가트」의 「리바이벌·붐」이 미국에서 대단한 것과 견주어 뭔가 오늘의 풍토를 알려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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