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부족이 부른 「바다의 참사」-동해안 어선조난사고가 던진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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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3백20여명의 익사·실종자를 낸 동해해난사고의 문제점들이 현장을 체험하고 돌아온 어부들을 통해 생생하게 밝혀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어민들이 사고 해역인 대화퇴어장의 기상경보를 소홀히 다루었고 원해출어의 대책이 허술했던 점으로 집약되고 있다.
대화퇴어장은 울릉도 등 북쪽 2백60「마일」. 수중분지로 3백10∼7백m의 얕은 수심이어서 좋은 어장조건을 갖추고 있다.
늘 꽁치·오징어·고등어 등의 어자원이 들끓는다. 북위39도 30분∼40도30분, 동경1백34도∼1백35도 사이에 걸쳐 동서로 1백「마일」. 남북간 60「마일」 크기로 서남방으로 비스듬히 누운 고구마 형.
대마해류가 북상, 일본 서안으로 진출했다가 동해를 돌아 내리면서 한줄기조류가 북상난류와 이곳 해역에서 교차하게 된다. 따라서 여울목 비슷하게 굽이치는 파도가 일어나며 심할 때는 삼각파도라는 노도를 휩쓸어오게 마련. 연안의 파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격랑이 발생, 맹렬하게 바다를 뒤집는다. 그래서 10월말 폭풍우가 휘몰았을 때 황금어장은 마의 10m 노도를 몰아왔고 물기둥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 같은 해양기상 상태인데 20t미만 어선이 이웃집 나들이 가듯 아무런 대비책 없이 조업을 해왔으나 당국은 아무런 손도 쓰지 않았던 것이 문제점.
70년대 이후 줄어드는 연안자원으로 동해안 어민들은 대화퇴어장에 넘나들며 돌파구를 찾았다.
하지만 「마의 어장」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고 대비책은 허술했던 것.
항해거리가 40∼50시간으로 길어졌고 위험성도 가중됐으나 어선의 장비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10년 넘은 선령의 20t미만 어선이 대부분인데다 무전기 등 장비는 특별히 개선된 것이 없었다. 속초어업 무선국 산하 속초·거진항의 경우 무전기를 시설한 어선은 3백84척으로 모두가 10W짜리의 소형 무전기를 달았다.
이 무전기는 정상적인 성능이라도 교신거리가 3백「마일」에 지나지 않는데 대화퇴어장은 속초와의 직선 거리가 3백80「마일」, 그나마 1백50여척의 어선에 시설된 무전이 5년 이상친 낡은 것이어서 툭하면 교신이 끊기기 일쑤다. 이 밖의 2백34척도 평소능력이 5∼6W의 성능, 특히 주목할 것은 전자제품엔 바닷바람의 염분이 치명적인 탓으로 새것을 사도 얼마안가 염분침식으로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 이번 실종어선의 조난엔 소형어선들이 육중한 시설을 무리하게 갖춘 점이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종한 금성호(20t)의 경우 출어 전 오징어 집어 등의 촉광을 높인다고 2·5t 무게의 발전기를 새로 시설했다. 발전기를 잡아맨 끈이 끊겨 한쪽으로 밀리면서 배가 기운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대부분 어선들이 발전기뿐 아니라 원해출어에 따른 선도용·얼음 6∼7t, 어상자 등 10t이상 무게의 짐을 싣고 출어하게 마련-.
이번 격랑에선 이 같은 무거운 시설들이 모두 조난의 화근인 것으로 밝혀졌다
삼양호(18t)의 경우 한 때 이것을 바다 속에 던지려다 배가 뒤집힐 것 같아 「로프」로 단단히 엮어 위기를 모면했다.
선박 안전조업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도 문제. 15t이하의 어선은 동경 1백3l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규정(안전조업규정 14조 2항)에도 불구, 소형어선들이 겁없이 망망한 바다를 내왕했고 조난 때 구해 줄 수 있는 선단은 편성돼 있으면서도 출항 때만 같이 행동했을 뿐 바다에선 위치조차 모르기 일쑤. 그뿐 아니라 당국의 원해어로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밖에 오히려 인명을 앗아간 불량 구명동의가 버젓이 합격품으로 어민들에게 공급된 사실 등 전반적으로 해상안전에 대한 당국의 조처가 허술했던 것이 큰 참사를 빚은 동해 해난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속초·강릉=장창영·권혁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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