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제품처럼 되어 가는 현대인|김원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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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많이 듣는 말이지만, 영웅이나 위인의 시대는 전세기로 끝난 것 같다. 지사나 기인이 대우받던 시대도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은 「좀 별난 사람」 조차 찾아보기가 힘들다.
생활의 범주가 좁아서 그런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성격이나 버릇의 작은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비슷비슷한 생활인들이지 특별히 모가 난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만약 행동이나 생각이 좀 별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벌써 이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멀리 쫓겨났거나 스스로 자멸의 고배를 마셨거나 아니면 자기의 모난 면을 수치스럽게 자인한 나머지 피나게 갈고 닦아 대다수의 시민 속에 동화되어 버림으로써 남의 이목에 오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시골 읍에서 소년 시절을 보낼 때, 내 주위에는 선량한 별난 사람이 여럿 있었다. 쉽게 떠오르는 대로 강판쟁이란 사람도 그중 하나다. 그는 밥상 따위의 판을 만드는 목공이 있는데, 요즘 사고방식으로는 게으름뱅이 이고, 좋게 보면 여유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루에 불과 서너 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았다. 장인은 못 되었으나 강판쟁이의 판이라면 그 견고성이 근동 장터에 소문이 자자하여 일거리가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물욕이 없어 두간 초가에 만족하며 살았다. 천렵과 술과 타령으로 낙을 삼다가 양식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독촉이 있어야 마지못해 연장을 들었다. 그러나 강판쟁이가 아교를 끓이고 대패를 들 때면 일의 성실성이 무서울 정도였다.
또 김장구라는 머슴이 있었다. 그는 팔척 키에 몸이 좋아 젊을 때 씨름판에서 광목필도 타내었는데, 맞이한 처가 꼽추였으나 그 난장이 꼽추를 무척 아꼈다.
김장구는 장터에서 쌀가마나 고기 상자를 날라주는 그런 잡역으로 일을 삼았지만 마음이 너그럽기가 바다 같아서 남의 일을 도와주는데 그 청탁이나 품삯에 도무지 티를 내지 않아, 팔푼이란 소리를 들어도 그저 허허 웃고 살았다.
그런데 그의 꼽추 처가 산후가 좋지 않아 죽자, 사흘간 동네방네가 떠나가도록 운 것이 두고두고 읍내 화제가 되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함이 하도 절절해서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는 정말 전적으로 별난 사람을 요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세금 공세로까지 압력을 가하는 1남 1녀의 가족 계획 아래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플라스틱」 제품처럼 획일화되어 성장하기 때문이다.
예방 주사·이유·가둬 키우기를 거쳐 국민학교부터의 교육 과정이 철저하게 요식화 되어 있다. 똑똑한 아이, 튼튼한 몸, 우수한 성적에서부터 낯선 사람이 친절을 베풀면 절대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충고에 이르기까지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삼위일체로 「가장 모가 나지 않는 사회인」으로 만들기에 그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앙케트」에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첫째가 돈이고, 둘째가 명예라는 어느 통계 자료처럼, 오늘날 물량 위주의 시대에는 인생의 목표가 너무 한결같이 분명하여 그 관점이 똑똑하기보다 끔찍할 정도다.
그 출세주의의 과정에는 한푼의 회의나 망설임이 없이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합일하여 지원하고 있다. 만약 어느 학생이 덕성·정의·인격 따위의 단어 앞에 잠시 생각의 여유를 갖게라도 되면 이는 분명 「모날 징조」로 간주되어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생의 본질을 두고 고뇌하게 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말라」는 농지거리나 듣기에 알맞은 세태다. 한마디로 「선량한 별난 사람」을 인정해 주는 사회 풍토가 더욱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지식 주입의 교육 과정과 가풍이 옛말이 된 단견의 가정교육과 여유 있는 사회 분위기에도 이제 새마을 바람이 좀 불었으면 좋겠다.

<필자 소개>
▲1942년 경남 김해 생 ▲영남대 졸 ▲67년 장편 『어둠의 세제』로 문단 「데뷔」 ▲75년 현대문학상 수상 ▲저서 소설집 『어둠의 혼』 『잠시 눕는 풀』 『오늘 부는 바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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