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권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택동 사후의 중공 권력투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전개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우선은 화국봉·실무파·군부의 연합세력이 상해파를 숙청, 제1단계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경의 신체제는 앞으로 동북아를 포함한 전반적인 국제관계에 과연 어떤 자세로 나올 것인가.
북경의 신권력층은 우선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모사상과 문혁이념의 원칙적인 반소주의와 반 수정노선을 결코 「사보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견지되어온 중공대외전략의 반소적인 구조 자체가 무너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핵공격능력에 대한 위험도의 평가나 그에 대한 방어전략을 둘러싼 외교우선론과 군사중시론 사이의 전통적 노선투쟁이 과연 어떻게 전환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북경 신체제의 세계전략은 최종적인 방향타를 잡을 것이다.
지금까지 상해파의 기본입장은 핵대국 소련의 위협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핵무기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투항주의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견해는 작년 8월께 발표된 양효의 『임표의 매국철학을 평함』이라는 논문, 그리고 안묘의 『유가의 투항주의와 매국적 임표』라는 글에 잘 나타나있다.
그리하여 핵이나 현대무기에 의한 정규전보다는 인민전쟁이, 서방기술이나 군장비의 도입보다는 자력갱생이, 정규군 못지않게 민병이, 군사주의보다는 모택동식 외교활용이 소련 고립화전략의 기본적인 수단으로 강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혁파의 눈에 비친 미국은 어디까지나 외교적 이용대상이었을 뿐 ,대소전략을 위한 긴밀한 군사적 제휴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등소평의 입김이 강한 중공군 제2야전군 계열의 강자 진석련은 어떠했던가. 그는 양핵의 주장과는 반대로 작년 5월11일 중공군체육대회 석상에서의 연설을 통해 『혁명화되고 현대화된 강대한 군대』의 건설을 주장했다.
이어서 그해 10월1일 소련 접경지대에서 행한 연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소련의 기습공격에 대비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역설한 바도 있다. 그로부터 1년 후 북경에는 양효 논문이 대변한 상해파가 몰락했고, 그 대신 진석련이 대변한 군과 실무파의 신체제가 성립했다. 이러한 권력변동은 자연히 소련의 팽창주의와 핵 공격에 대비한 시급한 군 현대화와 무기근대화를 주장한 주은래·진석련의 입장을 다시금 선명하게 부각시길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에 따르기 위해 북경 신체제는 미국과의 빠른 국교수립과 한계 있는 군수협력을 희망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경 신체제는 비록 실용주의적 집단이라 하더라도, 일부에서 전망하듯이 소련과의 화해를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과의 접근노력을 더 한층 강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점은 미국의 대중공 군수지원론자인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을 특별히 환대한 것이 문혁파 아닌 화국봉·섭검영·교관화였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만약에 북경 신체제가 대미관계를 더한층 긴밀화하려 한 경우 북경을 설득하여 북괴의 호전성을 어느 정도 억제하도록 하려는 미국의 기도는 계속 일정한 효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북괴는 북경의 미온적인 태도에 불만한 나머지 다시금 소련에 의지하려할 가능성이 생긴다. 소련은 그 틈을 타 북괴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북괴의 도발책동을 의식적으로 지지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북경정변의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화국봉 체제의 대소위기감과 그에 따른 대소방어전략에 대해 미국은 실기함이 없이 신축성 있는 대응책을 발휘하기 않으면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