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새장 안에 가둬야 삐져나오면 또 다른 새장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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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력을 새장(제도) 안에 가두고 새장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관료들은 또 다른 새장(감옥)에 가둬야 한다.” 지난 11일 베이징대에서 열린 반부패 한·중 대토론회 직후 만난 리융중(李永忠·사진) 중앙기율검사감찰학원 부원장은 발언에 거침이 없었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진 중인 반부패 드라이브의 방향에 대해 “‘권력에 의한 반부패 단죄’에서 ‘시스템에 의한 반부패 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기율검사감찰학원은 사정·반부패를 총괄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직속기구로, 기율검사인력 양성 기관이다. 기율위는 최근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비리를 파헤쳤으며 그의 신병 처리만을 앞두고 있다. 리 부원장은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중국의 부패는 한국보다 더 심각했으나 처벌은 미흡했다”며 “일부 지역, 부분을 대상으로 한 게릴라전, 즉 ‘참새의 전쟁’에서 전면전으로 가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 시진핑 주석이 파리(잡범)와 호랑이(큰도둑)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권력과 조직을 갖고 있는 호랑이들이 조직적 저항을 하면 어떻게 하나.

 “파리는 인민대중을, 호랑이는 당 고위 관료들을 겨냥한 슬로건이다. 예방 효과가 있다. 쉽지 않지만 그 길을 포기할 순 없다. 권력에 의한 반부패에서 제도에 의한 반부패로 가면 가능하다.”

 - 구체적 방안이 있나.

 “일당제인 중국에서 부패를 도려내려면 공산당의 권력구조를 ‘삼분(三分)’해야 한다. 당위원회의 권한을 정책의결권, 정책집행권, 감찰권으로 나누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18차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이를 채택해 감찰이 가능해졌다.”

 -‘정치개혁특구’ 주장은 뭔가.

 “지리적 개념이다. 경제특구처럼 특정 도시를 정치개혁 특구로 지정해 반부패 실험을 하자는 것이다. 싱가포르·홍콩과 같이 행정시스템이 정착되면 부패 없는 도시로 만들 수 있다.”

 - 저우융캉 신병처리 전망은.

 “(내부) 기율이 있어 대답할 수 없다.”

 -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등의 개혁 속도조절 훈수를 권력 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외국 언론이 중국 공산당 내부에 파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중국의 국정, 당정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 한국에서 벤치마킹할 게 있다면.

 “공무원 재산공개 제도다. 다만 중국에서는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단기간에 전 지역에서 실행하려다간 체제가 전복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어서다.”

 인터뷰 직전 리 부원장이 참석한 ‘반부패·금융개혁 대토론회’는 한국의 포럼오래정책연구원(원장 김병준 전 대통령 정책실장)과 지난해 출범한 베이징대·푸단대·지린대 합동연구소인 중국 국가치리협동창신센터(國家治理協同創新中心)가 공동 주최했다.

 포럼오래 함승희 회장은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정책으로 고급 접대문화가 사라지면서 시중에 가짜가 90% 이상이라던 마오타이 값이 내리고 가짜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반부패 수사로 불편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시장 경제의 기반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기폭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요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중국 국영기업 회장 일부는 널찍하고 화려한 집무실을 없애고 부장급 사원 옆에 자기 자리를 만들어 근무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토론회에는 진념 전 부총리, 김병준 전 실장,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중국 측 뤄하오차이(羅豪才) 중한우호협회 명예회장(전 정협 부주석), 리옌숭(李岩松) 베이징대 부총장 등이 참석했다.

베이징=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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