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군 투입 초읽기 … 내전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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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친러 시위대가 해산을 요구하는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을 투입할 방침이어서 유혈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호르리프카에서 친러 시위대가 경찰서를 급습해 점거하고 있다. [호르리프카 AP=뉴시스]

우크라이나가 다시 기로에 섰다. 이번엔 내전의 위기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13일(현지시간) 동부 지역의 친러시아 무장세력을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그는 이날 TV에 출연해 “인명 피해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무력을 동원한 테러 행위에 대해선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크라이나로선 크림반도를 잃듯 다른 지역을 잃을 순 없다는 의지다.

 그가 못박은 시한은 한국시간으로 14일 오후로 이미 지났다. 언제든 군을 투입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유혈 사태가 내전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전날 국가보안국 부대를 동원해 도네츠크주의 슬라뱐스크 경찰서를 점거한 친러 무장세력 검거에 나섰었다. 보안국 장교 1명이 숨지고 부대원 등 4명이 부상했다. 시위대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서를 탈환하지 못했다. 아르센 아바코프 내무장관은 “분리주의자들은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러 세력에선 모스크바를 향해 “이젠 도와달라”고 노골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동시에 미 중앙정보국(CIA)을 무력 진압의 배후로 지목했다. 축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국영 TV에 출연해 “존 브레넌 CIA 국장이 우크라이나의 새 지도부를 만났다”며 진압 배후설을 주장했다. CIA는 브레넌 국장의 소재는 공개하지 않은 채 “CIA의 무력 촉발 주장은 완전한 허구”라고 맞섰다.

 그러는 사이 충돌은 도네츠크주 일원으로 확대됐다. 슬라뱐스크와 이웃한 크라마토르스크, 도네츠크주의 두 번째 도시인 마리우폴과 예나키예보 등에서도 친러 세력의 관공서 점거가 잇따랐다. 경찰서도 습격 대상이 됐다. 루간스크주의 루간스크에선 경찰청 부청장이 시위대에 합류했고 오데사주의 주도인 오데사와 하리코프주의 하리코프에서도 친러시아계와 우크라이나계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러시아의 요구로 유엔에서 긴급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렸다. 러시아의 비탈리 추르킨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의 유리 세르게예프 대사는 러시아를 향해 “우크라이나를 그냥 둬달라”며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위기를 조장하고,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미국의 서맨사 파워 대사도 러시아가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워 대사는 앞서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친러 무장 세력이) 전문적이고 조직적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일이 아니다”라며 “무장세력이 6∼7개 도시에서 정확하게 같은 행동을 했다. 이는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명백한 징후”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개입설을 부인하고 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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