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자주 바꾸는 펀드 가입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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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정복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사람이건 기업이건 꼴찌를 해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며 메리츠운용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한 매니저가 장기투자 원칙을 가지고 꾸준히 펀드를 운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에서 실험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취임 후 펀드를 들여다보니 종목 회전율이 너무 높더군요. 종목을 자주 사고팔았다는 건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아니라 자금 흐름이나 주가 상승 계기(모멘텀)를 보고 투자했다는 얘깁니다. 그것부터 바꿨습니다.”

 지난 11일 만난 이정복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해 본지 펀드평가에서 연간 -3.7% 수익률로 운용사 중 꼴찌를 했던 메리츠자산운용은 이 대표 취임 후 석 달 만인 올 1분기 평가에선 2위로 올라섰다. 이 대표는 1984년 월가 최초의 한국 기업 투자 펀드 ‘코리아펀드’를 10년 이상 운용한 존 리란 이름의 매니저로 더 유명하다.

 - 종목을 어떻게 바꿨다는 건가.

 “미국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영할 땐 1년에 보유 종목의 15%만 사고팔았다. 타이밍을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팔 이유가 없었다. 그때처럼 한번 사면 최소 3년은 들고 있을 종목들로 바꿨다. 한국엔 장기투자 개념이 없다. 기업이 아니라 유동성과 모멘텀을 예측해 단기투자하는 것, 이게 여의도 투자법이다. 여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여의도를 떠났다.”(※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북촌 한옥마을 인근으로 이전했다.)

 - 단기투자로도 수익을 낼 수 있지 않나.

 “짧게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 자금 흐름과 상승 모멘텀을 정확하게 맞혀야 하는데 그건 신의 영역이다. 매니저가 할 수 있는 건 그 기업이 얼마나 탄탄한지,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까지다.”

 -취임 후 2개 펀드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법적인 제약 때문에 2개를 남겼을 뿐 같은 전략으로 운용되는 사실상 같은 펀드다. 내가 있는 한 한국에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을 발굴해 장기 투자하는 펀드는 이거 하나다. 이것도 무한정 규모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시장 규모를 고려해 일정 수준이 되면 폐쇄형으로 전환할 생각이다. 비슷한 전략의 펀드를 여러 개 내고, 특정 펀드가 인기 있으면 무한정 몸집을 늘리는 건 고객이 아니라 운용사의 주머니를 불리는 전략이다.”

 - 가치주 펀드인가, 성장주 펀드인가.

 “세상에 가치 투자 아닌 투자가 있나. 한국식 성장주·가치주 기준에 얽매이지 않겠다. 굳이 정의하자면 베스트 아이디어 펀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한지, 사업구조는 지속 가능한지, 지배구조는 건전한지, 경영진은 우수한지 등을 따져 장기 투자하는 펀드다.”

 -정량 평가보다 정성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주가수익비율(PER)도 보고 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계량화된 수치도 본다. 하지만 그렇게 정량화할 수 없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 그걸 알아내려고 기업 방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가보지 않은 회사엔 투자하지 않는다.”

 - 정량 평가는 오롯이 매니저 몫인데.

 “최고운용책임자(CIO)인 나를 포함해 매니저가 총 6명이다. 모두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왔다. 나와 21년을 일한 매니저도 있다. 내가 피력한 운용 철학을 공유하고 체화한 이들이다. 나는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혹시 우리 팀이 떠나면 펀드를 환매하라고 말이다. 매니저가 바뀌면 전혀 다른 펀드가 된다.”

 - 한국 운용업계는 이직이 잦아 매니저가 자주 바뀌는데.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다. 매니저가 자주 바뀌는 펀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 2006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 ‘장하성펀드’ 운용을 맡기도 했는데.

 “주식을 10년, 20년 들고 있을 투자자에게 기업 지배구조는 곧 그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고 지속 가능성이다. 2006년에 비하면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주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게 많다. 한날 한시에 주주총회를 하는 관행 같은 게 대표적이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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