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를 기리는 마음|2주기를 맞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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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새로워지는 광복의 감격이 조국 산하에 메아리 치던 어느 날, 우리는 한줄기의 따사로운 햇빛을 영영 잃어버리는, 슬프다기 보다는 괴롭고 분통한 순간을 겪었습니다.
얄궂은 시련의 장을 서슴없이 넘겨 버린 신도 전진과 건설만을 거듭하는 우리 조국의 안팎에 아직도 이를 시기하고 의심하는 눈먼 사람들이 간간이 남아 있음을 풍자하면서 괴로운 눈물을 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국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비는 제단에 몸소 제물이 되어 선혈을 뿌리신 고인은 오늘도 한강변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기적을 바라보시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유명을 달리하시어 따사로운 손길은 대할 길이 없지만 남기신 수많은 유업과 몸소 행함으로써 일깨워주신 불멸의 가르침은 더욱 줄기차고 더욱 찬란한 한줄기 빛이 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밝혀줍니다.
흔히 강변에 사는 사람은 사막을 여행하고 나서야 물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영부인 추모 장학생이라는 영광으로 이국 땅을 밟아보고서야 고인의 덕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은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속박되지도 않은 여성들을 해방시킨다는 구실로 스스로 세계여성을 지배 하려드는 성난 여인들이 판을 치고 또 인정받기도 하는 나라에 비한다면 너그러움과 자애로움의 부덕을 조상 대대로 물려받고 이를 몸소 실천하여 보인 여성 지도자를 가졌던 우리 나라가 얼마나 축복 받고 또 축복 받을 만한 나라인가는 자명해집니다.
인권을 위해 사형 폐지를 거론한다면서 문명국임을 자랑하지만 달아나는 도둑에게 경찰은 서슴없이 총을 쏩니다. 노란색과 까만색의 인권은 하얀색의 인권만큼 값이 나가지 못하는 것인지?
우리가 외국인에게 베푸는 친절과 호의는 정말로 사대주의에서 연유한 것인지.
우리의 의지와 고래의 예절이 때로는 오해되고 때로는 경시되기도 합니다만 종국에 가서는 누구라도 감동시키고 마는 것 같습니다. 편견과 자만으로 가득찬 어느 외국인도 고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만 가슴을 허물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맨 먼저 추모 장학생의 영광을 얻은 우리들은 고인의 남기신 뜻을 받들어 조국 발전에 도움이 될 기술과 지식을 한껏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우리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주저하거나 사양할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차원에서만 계속될 수 있는 이러한 기술과 지식의 습득보다는 외국인들의 생활과 사상을 보다 가까이 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 이야말로 더욱 귀중한 고인의 유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냉엄한 타산의 세계에서 맨주먹의 의지로 감연히 일어선 조국에 대한 벅찬 긍지와 함께 이 거센 파도를 뚫고 힘을 합쳐 내일로 전진해야 할 무거운 사명의 재인식이야말로 우리들에게는 고인이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깨우침이 이 땅에서 태어난 젊은 가슴 어디엔들 없겠습니까마는, 이런 계기로 이를 더욱 절감하게된 뒤늦은 부끄러움과 함께 고인의 유덕을 우러러 더욱 새로운 각오로 또 한번의 광복절을 맞는것입니다.
곽태원 <제1회 영부인 추모 장학생·미「샌터클레러」대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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