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종(의학사·서울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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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온 지구가 거의 하루동안의 거리로 좁혀져 가고 있다. 이 지구상의 인류는 바람직하기로는 미래엔 한가족으로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랑과 협조로써 단란하게 지낼 길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하게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제나라와 민족, 제사회의 단위로 저마다 각자의 권익만을 옹호하고 고집하는데 서로 발버둥을 치고 있을 뿐이다.
이른바 강대국들은 강대국대로 냉전·열전을 벌여가면서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가 하면 약소국들은 그 틈바구니에 끼여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래의 밝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어떠한 소망을 가져야 될 것인가.
세상에서는 자기민족이 다른 민족보다도 우월하다고 자부심을 갖지 않는 민족이 별로 없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각기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이 갖지 못한 특색 있는 전통과 재능을 서로 갖고 있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각 민족들의 전통과 재능은 서로 같지 않다. 우월이나 열등을 비교할 성질의 것이 못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평등하다는 점에서 각 민족들의 특색을 서로 받아들여 융합시키고 완성되도록 한 것이 오늘의 인류문화이다. 이런 길을 뒤쫓아가면 멀지 않은 장래에 인류는 한가족의 세계를 이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종래와 같은 침략적이며 독선적인 제나라·제민족·제사회의 권익만을 신장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사명인 것처럼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우기 우리와 같이 국토는 좁은데 인구는 빽빽하고 게다가 산업의 성장도 그렇게 높지 않은데 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추측하기 어렵다.
우리들은 민족적 시야를 국제적으로 넓혀 문호를 개방하고 민족의 장벽을 깨뜨려 공존·공영의 길로 함께 나아가도록 세계를 향하여 부르짖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오늘의 우리의 갈 길이며 소망이 아닌가 생각된다.
근래에 와서 우리민족들도 해외로 이주하는 수가 부쩍 늘고 있다. 국제화되어 가는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제일 많이 있는 곳이 일본이요 그 다음이 미국이다. 이들의 생활상태를 보면 대개는 그 나라의 환경과 습속에 많이 동화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 매우 농후해지고 한국인으로서의 특색은 점점 희박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제2세들은 그 부모들이 우리말이나 전통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우리 민족의 주체의식이 모자라는 탓이라고 속단할는지 모르나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이미 세계가 한가족으로 좁혀져가고 있는 과도기의 현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세계의 어느 나라를 가든지 어느 민족을 대하든지 다른 민족들이 갖지 못한 우리의 전통과 재능을 미래 세계의 새 세기를 이룩하는 한 「멤버」로서 이바지하는데 특색을 가져야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쉽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현재 외국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2세들이 제나라 말이나 문화전통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인으로서 다른 민족들과 보조를 같이 하는데 허점을 남길 염려가 없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 비판 없이 망종에 가까운 자세를 갖기 쉽다. 적어도 자체 전통에 대한 어느 정도의 교양이나 상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다른 민족들의 문학전통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국제인으로서 교양을 넓혀 가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갖춰 세계의 한가족으로서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하도록 힘써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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