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던 일본펀드, 주목되는 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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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해 전 세계 시장 중 가장 돋보였던 곳은 미국도, 유럽도 아닌 일본이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가 52.4% 올랐을 정도다.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투자 규모도 4억8200만 달러(약 5005억원)로, 전년 대비 65% 늘었다. 아베노믹스 덕분이었다. 하지만 올핸 바로 그 아베노믹스 때문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닛케이225는 올 들어 10% 넘게 하락했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아베노믹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불거진 탓이다. 이달 감행된 소비세 인상도 악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지는 강력하다. 지난 7일 발표된 2월 일본 무역수지 현황도 흑자로 돌아섰다. 일본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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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트가 될 만한 내용이 지난 1일 발표됐다. 일본공적연금펀드(GPIF)가 향후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128조 엔(약 1300조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GPIF는 세계 최대 연기금펀드다. 일본 내에서도 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투자기관이다. 큰손이 움직이면 일본 금융시장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날 발표의 요지는 “주식과 해외자산 등 위험 자산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 주식 투자 비중을 전체 자산의 18%를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도, 10명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변경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GPIF가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시점을 하반기로 보고 있다. 오는 6월 정부가 신성장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고용과 농업·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를 주요 골자로 한 신성장 전략으로 내수를 부양하겠다는 취지다. GPIF도 이 전략에 맞춰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릴 전망이다. 1일 발표한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방안은 이를 위한 밑밥인 셈이다. 일본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그 시점을 6월 이후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GPIF의 주식 투자 비중 확대는 채권 시장엔 악재다. 일본 채권 시장의 가장 큰 투자자가 GPIF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줄면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금리는 올라간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중앙은행은 7월 이후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할 전망이다. 박유나 동부증권 연구원은 “GPIF 대신 시중의 채권을 받아낼 수 있는 건 중앙은행뿐”이라며 “7월 이후 월 7조 엔 수준인 양적완화 규모를 10조 엔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채권을 받아내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 연구원은 “당분간은 버티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일본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면 채권을 매도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

 7월 이후 일본 정부가 양적완화 정책 규모를 늘리면 엔화는 약세로 돌아선다. 게다가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달러는 강세를 띨 전망이다. 엔화는 매도하고 달러는 사는 전략이 적합하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자국 통화가 약세를 띠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뺀다. 환 손실 위험이 커지는 탓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노상원 동부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가 환 손실 위험보다 클 것이라는 게 외국인 투자자들의 생각”이라며 “지난해에도 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주가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반기 일본 주식은 사고, 채권과 엔화는 매도하는 전략을 모두 구사할 수 있는 투자 수단이 있다. 미국에 상장된 일본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일본 국채 인버스 ETF와 일본 주식 ETF, 엔화 숏(매도) ETF가 모두 상장돼 있다. 이렇게 투자할 경우 원-달러 환율과 달러-엔 환율에 이중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위험요소다. 이걸 피하려면 시중에 나와 있는 일본 펀드에 가입하면 된다. 다만 펀드 투자 시 주식을 사는 전략만 가능하다.

 유의해야 할 게 더 있다. 일본은 변동성이 큰 시장이란 점이다. 문경석 KB자산운용 퀀트운용본부장은 “일본 시장은 특히 환율에 민감하다”며 “환율은 변동성이 큰 만큼 일본 주식 시장도 급등과 급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정부 의지가 강력하긴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정부의 바람대로 작동할지 여부는 여전히 남아 있는 변수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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