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 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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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흔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별로 인기 없는 직종이 있다면 무슨 「자문 위원」이었다. 위로는 중앙청의 각 부처에서 아래로는 주거지의 통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각계 각도의 자문 위원들이 있어 왔다. 지금까지 이들이 한 일이란 대체로 「회의를 위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때로는 찬조금 따위를 결의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후자는 그나마 애교라도 있어 보인다.
현재 우리 나라 중앙 행정 기관에는 무려 1백60여개의 자문 기구가 있다. 이들이 무엇을 자문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정책으로 채택되었는지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알려질 만한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영어로는 자문 위원회를 「어드바이저리·코미티」라고 한다. 「코미티」는 「코미트」 (Commit)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코미트」의 어원을 보면 뜻을 함께 (Com) 모은다(mitto)는 말이다. 따라서 「자문」 위원회란 『충고나 조언을 모으는』위원회란 뜻이다. 물론 그 목적은 어떤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한 정책이 정해지기까지는 몇 단계의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우선 의회의 청문회가 있다. 이 자리에선 여러 종류의 견해가 여러 가지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폭넓게 발표된다. 진취적이고 과격한 의견이 있는가 하면, 보수적이고 온건한 주장도 있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의 상품들이 전시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들 전시회에 진열된 상품들의 품질과 실용성을 검토하는 기구가 이를테면 자문 위원회다. 의회는 물론, 행정부도 중요한 정책 전환이나 채택이 있을 때는 예외 없이 이런 과정을 밟게 된다. 「키신저」 외교가 「밀실 외교」「원·맨 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가령 중공과의 관계 개선 문제는 익히 미국의 학계나, 전문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토론되어 온 과제 있다. 평지 돌출의 「아이디어」는 아닌 것이다. 행정부는 오랜 기간을 두고 여러 「채늘」을 통해 그런 정책적인 자문을 받은 연후에 실천으로 옮긴다. 「키신저」는 다만 그 시기와 방법을 비밀로 했을 뿐이다.
영국의 경우도 이에서 예외 일수는 없다. 가령 유명한 「로빈스·리포트」를 만들어 낸 것이 이러한 자문위요, 이 자문위의 답신이 곧 교육 정책 입법의 방향인 것이다. 최근 정부는 다시금 여러 분야의 인사들이 망라된 자문 기관을 구상중이라 한다. 필경은 그럴 필요를 절실히 느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문을 위한 자문」, 「회의를 위한 회의」로 그치는 기구는 있으나마나다. 우선 그 목적과 역할이 뚜렷해야 하고, 그러한 자문위는 자기의 답신을 정책화할 수 있는 힘과 권위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거기다 그런 기구의 자문을 경청하려는 귀까지도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이들의 조언을 들을지 말지 모르는 자문위라면, 자칫 기구를 위한 기구로 그칠 공산이 크다. 행정부의 「겸허한 귀」가 무엇보다도 먼저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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