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적의 성묘방문단 교환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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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는 대화를 통한 남-북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전혀 관심이 없음이 분명하다. 9일 열린 남북적 실무회의에서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성묘방문교관 제의가 북적에 의해 또 다시 일언지하에 거절되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미국의 정보기관까지를 사칭한 북괴의 재미 교포 평양유인공작이 밝혀지고 있다. 속임수에 걸려 북한에 다녀온 남 모 교수는 그가 만난 북괴고위 간부 모두가 남-북 대화는 않겠으며 혁명하는 길밖에 없다 더 란 맡을 전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지나간 행적에 비추어 별로 새롭다거나 예측되지 못했던 일은 아니다.
다만 상대가 계속 이 모양이니 우리의 남-북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노력이 과연 보람있는 것인지 답답하다는 얘기일 뿐이다.
물론 우리도 1천만 이산가족의 뼈에 사무친 한이 몇 백 명씩의 성묘 단 교환방문으로 당장 해결되리라 곤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이미 3년간이나 교착되어 온 남-북 회담의 새로운 돌파구마련 뿐 아니라 전반적인 이산가족재회의 첫걸음이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가족이 서로 생사를 알고 만나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본연의 자세요, 성향이다. 그러니 이를 거역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곧 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30여 년 간 가속의 생사도 모르고 떨어 져 사는 수난을 겪고 있다. 시작은「이데올로기」때문이었다.
그러나「이데올로기」만이 수난이 지속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우리와 똑같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단된 동·서독은 벌써 이산가족재회의 길이 열렸다. 그뿐 아니다. 서방세계와 공산권간에도「헬싱키」선언이래 인적교류의 가능성이 높아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유독 한반도에서만 이산가족의 수난이 계속되는 까닭은 자명하다. 인간본성을 도외시하는 북괴공산집단의 악랄성이 아직도 완강하기 때문이다.
북괴는 성묘방문단 교환방문뿐 아니라 지난 4년간 우리측이 제의한 이산가족의 주소 및 생사확인을 위한 각종 방안과 그에 앞선 노부모사업·판문점 면회소 및 우편물교환소 설치·가족사진교환 등 모든 사업을 이른바 조건·환경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모조리 거부해 왔다.
북괴가 주장하는 조건·환경 논이란 반공법·보안법 등의 철폐, 반공활동 및 단체금지, 남북의 사업참가자의 인 신·휴대품 불가침 및 출판 결사·통행의 자유보장, 현 군사적 대치 및 긴장상태 해소를 위한 적극적 조치 강구 등을 당국이 법적·행정적으로 조치, 담보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산당과 간첩활동을 합법화하라는 얘기 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인도적 문제해결에 이 같은 정치적 문제의 선결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들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전혀 관심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욱이 남북문제의 점진적 해결이 아니라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식의 북괴주장은 결국 대화를 더 이상하지 않으려는 구실만을 찾기 위해서라는 게 이제는 분명해 질대로 분명해졌다.
지금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이산가족문제도 남-북 대화도 아니고, 오직 적화통일의 여건조성을 위한 무력증강과 대남 공작, 그리고 선전활동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마저 남-북 대화 재개노력을 포기해선 안되겠지만 대화에 대한 감상적 기대에 빠지는 것도 위험하다. 우리의 대비태세를 가다듬어 북괴의 남한적화혁명야욕의 행동화를 억제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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